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Jan 28. 2024

하얀 거짓말

거짓말을 싫어한다.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그런데 저 생각은 모순에 가깝다. 아니 확실히 모순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면 어느새 거짓말을 하는 내가 되어버리기도 하다는 것을 사랑을 하면 할수록 점점 깨닫게 되고 말기도 하니까. 가령 나조차 모르고 살았던, 또 다른 내 모습을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견해 버리는 것처럼. 사랑이 마냥 좋은 발견만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내가 선택한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도리어 나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려야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이 말이 누군가들에겐 참 모순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위해서 반대로 나 자신을 없애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이 말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정말 사랑하면... 그렇게 되기도 한다는 것을...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한 때 몇 가지 것들을 참 후회했었다. 결혼을 한 일. 쌍둥이를 낳은 일. 심지어 세상에 태어난 것까지. 모두 내 탓을 했다. 그리고 참 많이 미워했었다. 나 자신을. 한없이. 정말이지 끝도 없이. 특히 아이들을 낳고 돌연 변해버리고 마는... 내 안에 감춰진 지독하게 악마 같고 빈천한 모습이 생활 속에서 자주 발견되어 언제나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리곤 자괴감에 넋 놓고 몰래 울면서 괴로워했다. 너무 모자란 인간에게 신은 어째서 이렇게 귀한 생명을 둘씩이나 내려 주셨을까라고. 신을 많이 원망했다. 물론 그 원망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지만. 너무 귀한 생명이 다가왔으나 어째서 나는 가끔 이들을 감내하지 못하고 이렇게 울기만 하는 걸까라고... 9년 전에도 그랬고 여전히 그렇다. 아마 앞으로도 몇 십 년은 당분간 그럴 테지. 그래도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발전하는 면도 덩달아 생겼다. 일종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랄까. 한껏 신나게 울고 나면 어느새 입술을 바짝 깨물며 묘한 독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인생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 보자라는 식의. 당돌하면서도 묘하게 서글픈 그런 생의 의지랄까... 



가족 중 누군가 아프면 여간 힘들다. 작년엔 그이의 수술로 인해 한껏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고, 언제나 아이들을 키우면서 소아과는 매일 달고 살았었다. 쌍둥이라 번갈아 아프고 나으면 또 아프고 반복 또 반복은 익숙할 법한데 그럼에도 참 쉽지 않다... 그리고 올해 초엔 나 또한 온갖 경미한 병치레로 인해 여러 종류의 약에 의지하다 보니 어느새 새 해의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아이가 토해 놓은 흔적을 말없이 치우며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왜 또 토할까. 내과를 가야 하나 가정의학과에 가야 하나. 아니면 소아과에 또 갈까. 그래도 오늘은 예의 바르게 토해놨네. 아기 시절엔 벽에 침대에 소파에 난장판이었는데. 이 정도면 사람 다 됐네. 기특하다 치우기 좋게 그래도 화장실 근처라. 뭐 이런 생각들..... 허리를 숙여 걸레질을 하면서 만났던 너무 바보 같고 너무 후지고 너무 형편없이 정리되지 못한 문장들이 가득 밀려왔던 날. 



고단하고.

무겁고.

지친다...



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날엔 확실히 여배우 버금가는 연기를 더 펼치는 나와 마주한다. 생각해 보면 사랑을 더 많이 하려 할수록 반대로 나는 더 거짓말쟁이가 되어 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만다. '척'을 아주 많이 하게 되고 마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재밌는 척. 좋은 척. 화나지 않은 척. 안 아픈 척... 



책을 읽는 이유는, 유일하게 '척'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분명 괜찮지 않다. 분하다. 속상하다. 슬프다. 억울하다. 그만두고 싶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혼자 있고 싶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그렇지만 이 모든 부끄러운 나만의 감정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일 수 없다. 그럴 수 없다. 절대로.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확실히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버금가는 연기가 많이 늘었지만 한편 연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정말 그렇게 되어버리는 좋은(?)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웃다 보니 정말 웃게 되는 순간도 생기고, 괜찮은 척하다 보니 어느새 정말 마음이 유해지듯 괜찮아지기도 하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슬프고 누가 건들면 눈물이 툭 하고 흘러버릴 것 같으면서도 이 악물고 씩씩하게 순간순간 헤쳐 나가다 보니 어느새 회복탄력성이 엄청나듯 파이팅 하는 열정 넘치는 내가 되어 있기도 하다... 



무엇이 진짜 나 인지 모르지만 이젠 굳이 알려하지도 않는다.

그 두 모습 모두 그저 길 잃고 헤매듯 휘청거리면서도. 결국 사랑하려는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거짓말쟁이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얀 거짓말. 



당신과 아이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나는 충분히 거짓말쟁이가 것이다... 빈 하고 가난한 생각일 있지만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라고 믿는다. 아프고 힘들고 속상하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과 조우할수록 그럴수록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어떤 강해짐을 느끼고 말기에. 어떤 후진 상황들에 절대 지지 않겠다는. 반드시 이겨버리고 말겠다는 묘한 독기. 이런 상황들 속에서도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눈물이 절로 볼을 타고 흘러나와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게 되고 마는 어떤 뜨거운 마음...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들은 결국 모두 거짓말쟁이가 된다.

내가 당신을 위해. 그리고 당신이 나를 위해. 우리는 서로를 위해 결국 말했으니까.



'괜찮다'라고...'



그리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이 모든 걸 말해 줄 것이라고. 

우리가 그럼에도 사랑하며 살았음을.... 


제일 좋아하는 하루의 순간은 석양이 지기 전. 빛과 그림자가 함께 거실 안으로 들어올 때... 하루가 지나간다는 신호....





                     

이전 13화 사랑의 이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