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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이사를 갈 수 있을까?

by 늦봄

남편이 폴란드에 와서 힘들게 찾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 보통 주재원은 주거비를 회사에서 지원받기 때문에, 정해진 예산안에서 우리 가족에게 적당한 집을 찾기 위해 남편 혼자 폴란드에 먼저 와있을 때 구한 집이었다.


우리 집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앞에 근처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 있다는 것이다. 쇼핑몰은 아침 10시에 열지만 마트는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열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을 거의 바로바로 살 수 있다. 아이 기저귀가 똑 떨어졌어도 달려 나가 구입할 수 있는 축복받은 환경이다. 또 다른 장점은 아파트이면서 단지 내 놀이터 및 녹지가 잘 구성이 되어 있고, 아파트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눈이 올 때도 눈을 바로바로 치워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장점은 집주인 할아버지가 엄청 친절하시다는 것이다. 집에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오셔서 직접 처리해 주신다. 여름에 에어컨을 설치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설치작업이 걸린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나는 아이들과 집 밖에 나가있고 집주인 할아버지가 하루 종일 에어컨 설치기사가 작업을 끝낼 때까지 집에 계셔주셨다. 한 번은 남편이 집 밖에서 열쇠를 잠그고 출근을 했는데, 내 열쇠가 차에 있어서 아이 등원을 시키러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집주인 할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니 한두 시간 후에 도착해서 문을 열어주셔서 겨우 바깥세상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 유치원에서 차로 10분 거리, 남편 회사까지 차로 30분 거리. 양쪽방향으로 적당한 거리이다. 트램과 버스정류장이 바로 근처에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방이 단 2개이고 화장실이 1개라는 것. 남편과 아이들의 생활 스케줄이 다르다 보니, 남편이 작은방을 혼자 쓰고, 나와 아이들이 큰방을 쓰고 있는데 아이 둘은 점점 커지고, 첫째는 자꾸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식구가 4명이 되니 화장실 하나가 너무 부족하다. 아이 둘은 항상 동시에 배가 아프고, 동시에 피피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쇼핑몰이 집 앞에 있다 보니 견물생심이라고 아이들이 툭하면 마트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마트에 가면 항상 무엇인가를 사서 나오게 된다. 맹모삼천지교가 이래서 나온 말인가 싶다.


이 집을 구할 때는 남편 차 1대만 있었지만, 지금은 차가 2대가 되었다. 주차공간이 추가로 1개가 더 필요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차로 아이들 등하원을 할 수 있으니 좀 더 시내중심에서 멀어져도 괜찮겠다 싶었다. 주택에 사는 주변 지인들도 몇몇 있는데, 그들은 주택이 너무 좋아서 한국에 가서도 주택에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앞으로도 아파트에서 살 수밖에 없는데 폴란드에 있을 때라도 아이들이 주택에서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 주택이 아니라면 아파트 지상층에 정원이 있는 집은 어떨까?


우리 집의 계약이 9월 말에 끝날 예정이었다. 이사를 가기에 적당한 타이밍이 왔다. 이번에 이사를 한다면 폴란드에 거주하는 동안은 더 이상의 이사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신중해야 했다. 폴란드 이사업체는 이삿짐을 같이 패킹해주지는 않고 박스만 가져다주고 이사 가는 사람이 직접 패킹과 언패킹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고생은 딱 한 번이면 충분할 것이다.


먼저 폴란드에서 많이 쓰는 부동산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매물을 매일매일 검색했다. 80m 2 이상의 크기, 베드룸 3개 이상, 주차장 2개의 조건을 걸었다. 마음에 드는 매물은 많지 않다. 보통 광고에 임대료와 별로도 관리비가 있고 전기, 물, 인터넷 등이 포함이 안되는 경우도 있기에 총 한달에 나가는 비용을 잘 계산해야 한다.


가장 우선순위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 뜨는 매물이었다. 대부분 작은 집들이 많아서 베드룸 3개가 있는 집은 별로 없기에 계속 웹사이트를 보고 있는데 딱 마음에 드는 매물이 있었고, 우리 집 계약이 끝나기 1달 전쯤에 연락을 달라고 해서 그때 부동산에 연락해서 집을 보러 갔다. 집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는데, 이상하게 월세가 생각보다 낮게 책정되어 있었고 몇 개월 동안 집이 나가지 않은 게 이상하다 싶었다. 다음날 유치원 아이 친구들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다가 그 집 이야기를 했더니, 뜻밖의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 집에 이전에 살았던 세입자가 바로 아이 친구네 아빠의 회사에 다니던 분이었는데, 집주인이 처음에는 월세를 싸게 줬다가 매년 월세를 심하게 올려서 결국에는 주변 시세보다 더 많이 월세를 내고 이사 나올 때는 정말 작은 흠 하나하나 모두 문제 삼아서 크게 고생을 했다고 하는 것이다. 어쩐지.... 몇 개월이나 집이 비어있더라....


주택도 보고 싶어서 혼자 또 가족들과 같이 주택도 보러 갔다. 주택은 이런 문제점이 있었다. 새로 지은 신축 주택들은 아이들 학교, 그리고 남편 회사와 너무 멀어진다. 아이들 등하원 왕복에 차로 1시간 이상이 걸리게 되고 남편도 출퇴근 왕복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다. 바로 앞에 쇼핑몰을 두고 살았던 우리 가족에게 주변에 드넓은 밭 또는 도로만 펼쳐져 있는 집은 너무 큰 변화이다. 그렇다고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주택은 너무 노후화되었다. 겨울에 기름보일러를 돌리면 관리비가 얼마나 나올지, 단열은 얼마나 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외국인이 너무 없는 동네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남편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기에 낮에는 보통 나 혼자 있거나 아이들과 함께 있는데, 우리는 현지 동네에서는 너무나 눈에 띄는 외모이다. 놀이터나 공원도 바로 근처에 있어야 아이들이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고, 너무 시내 중심에 있다면 출퇴근 교통체증이 심할 것이었다.


매일매일 집을 보러 다니기를 몇 주... 어느덧 나는 이 근처 동네들을 거의 모두 둘러보게 되었다. 지리 공부가 저절로 되었달까.


내가 개인적으로 알아보는 것과는 별개로 남편 회사에서 주거비를 내주기 때문에 남편 회사에서 고용한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서만 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중개인에게 내가 원하는 매물을 알려주고 같이 방문해도 딱히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중개인은 내가 웹사이트에서 찾은 매물보다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매물을 더 우선시해서 푸시하는 느낌이 있었다. 우리가 만약 이사할 집을 계약을 한다면, 부동산 중개인의 수수료로 새로 이사 가는 집 월세 한 달 치와 VAT 23%를 우리가 지불해야 하고, 이사업체 비용도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만 해도 거의 몇백만 원이 드는 결정이다. 수백만 원을 쓰는 결정인데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집이 나타나지 않고 시간만 흘렀다.


결국 우리는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이사를 가지 못했다.

집주인이 계약을 연장할 것인지 연락이 왔고, 우리는 결국 연장을 했다. 하지만 의무 계약기간은 끝났기 때문에 이사를 하게 된다면 한 달 전에 미리 고지를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이사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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