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은 뿔이 있어요. 아주 가치 있고 귀중한 뿔이지요. 누군가에게는 만병통치약이고 누군가에게는 값비싼 장신구가 되기도 해요. 또 어떤 사람에게는 사슴의 뿔을 한번만이라도 만져보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이기도 하대요.
사슴은 몰라요. 그 뿔은 사슴의 머리 위에 달려 있거든요. 사슴은 그저 뿔을 가지고 있지요. 사슴은 뿔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어요.
뿔달린 사슴은 사람들이 그렇게 좋다고 하는 뿔을 본 적도 만져 본 적도 없어요. 근데 어디선가 듣게 됐어요. 사슴의 뿔이 그렇게 좋대. 응? 사슴은 난데? 사슴은 그 뿔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나한테 뿔이 있다는데 그게 뭔데 대체 그러지?
사슴은 향기가 가득한 꽃을 보면서도, 구름이 넘실대는 파란 하늘을 느끼면서도, 푸르른 녹음을 바라보면서도, 그렇게도 좋아하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도대체 나에게 뿔이 어디 있는지 한참을 생각했어요. 사슴은 괴로웠어요.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어푸어푸 세수를 하려고 물웅덩이를 갔어요. 물웅덩이가 찰랑찰랑~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니 사람들이 그토록 말하던 사슴의 뿔은 사슴의 머리 위에 있었어요. 어라? 사슴은 고민했어요.
나에게 만병통치약이 필요할까? 장신구는? 좋아보이고 멋져보이는 것은 맞지만 이제야 발견한 뿔을 떼버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좋은 것도 맞고 멋진 것도 맞지만 우지끈 뿔을 떼버릴 용기는 없었어요.
사슴은 그냥 뿔 달린 사슴으로 살기로 했어요. 만병통치약도, 장신구도 아닌 그냥 내 머리위에 달린 뿔로 냅두기로 했어요.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아주 나중에 후회를 하더라도 어쩐지 사슴은 그냥 뿔달린 사슴으로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사슴은 뿔이 있어요. 아주 가치 있고 귀중한 뿔이지요. 사슴은 알아요. 내 머리위에 뿔이 있다는 것을요. 사슴은 뿔을 떼지 않기로 선택했어요. 뿔달린 사슴은 이제 꽃과 하늘과 녹음과 음식을 다시 조금씩 느낄 수 있어요. 뿔달린 사슴은 나에게 뿔이 있구나로 충분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