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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은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사건의 경중과 관계없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by 컴쟁이

오랫동안 아파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건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흘러갈 때가 있다. 최근에 계류유산이 그랬다. 유산을 하고 처음 나는 정말 슬퍼했다. 남편과 부둥켜안고 울었다. 나 혼자 눈물을 또르르 흘린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부둥켜안고 숨죽여 운 것은 처음이었다.


충분히 애도했다. 그러고 나서는 호달달 떨며 수술을 받았고 무사히 마친 뒤 푹 쉬고 많이 자고 즐거운 마음 가짐으로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다행히 직장에서도 이 상황을 배려해 주셔서 거의 10일 가까운 휴가를 주셨다. 휴가 동안 정말 푹 쉬었다. 고작 한 권이지만 읽기 어려웠던 책을 완독 하기도 하고 뜨개질을 해 보기도 하고 오래된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웹툰도 몇 개 격파하고 과일도 실컷 먹고 솔로지옥과 신작 드라마 클립도 틈틈 봤다. 스크린타임을 16시간 찍기도 했다. 컴퓨터중독자 아직 안 죽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깊게 슬픔에 잠식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회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건의 경중과는 관계없이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다른 거구나 내가 여태까지 너무 과하게 슬퍼하고 너무 나의 감정에 집중했구나. 과하게 슬퍼하지 않고 몸과 마음에 충분한 휴식을 허락하면 이렇게 물 흐르듯이 지나가기도 하네.


분명 모든 상황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려 들 때 내가 내 가치를 폄하할 때 막연한 두려움에 밤 잠 못 이룰 때 잠시 멈춰 생각해 보자. 내가 너무 과하게 나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닌가?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이번에 배우지 않았는가? 사실 이번 말고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적은 정말 많다. 그럼에도 잘 살아왔다. 이번 여름은 왜인지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잘 보내지 못해도 괜찮다. 다시 마음이 튼튼한 겨울은 반드시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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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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