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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4. 2021

#16. 희망의 날갯짓

-  삶의 열망으로의 초대



희망은 날개 달린 것

내 영혼의 횃대에 앉아

곡조를 노래하네 가사 없는 그것은

그치는 법도 없다네,


돌풍 속에서도 감미롭다네,

폭풍으로 쓰라리고

그 따듯한 온기 품은 새를

당황케 할지언정.


나는 아주 추운 곳에서부터 들었네,

낯선 바다에서도

그러나,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그것은 내게 부스러기 하나 청하지 않았네.



18세기 중반 미국의 은둔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다. 생전에 1700여 편이 넘는 시를 썼으나 발표한 시는 고작 7편. 제목도 따로 붙이지 않아 첫 행을 그대로 따 '희망은 날개 달린 것'이라 불리는 시.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이름은 <키다리 아저씨>를 읽다가 처음 알게 되었다. 주인공인 주디의 영어 시험에 에밀리 디킨슨의 다음과 같은 시가 출제되었는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시에 눈길이 가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The Mighty Merchant'. 같은 책에서 '막강한 상인'으로 번역된 이 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나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는데/그것마저도 거절당했다/그 대신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니, 막강한 상인이 미소 지었다.// 브라질? 내가 떠나는 걸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그는 단추만 만지작거렸다/하지만 마님, 우리는 오늘 보여 줄 수 있다는 게/이것밖에 없나요?//


막강한 상인이라니? 목숨은 또 왜 바치겠다고 하는 걸까. 브라질은 뭐고 뜬금없이 거기서 마님은 왜 나오는 거지? 셰익스피어 비극의 한 장면처럼, 하인과 바람난 상인의 아내가 남편을 피해 어디 브라질로 도망이라도 가려는 걸까. 이중 부정에 도대체 화자는 몇 명인지. 의식의 흐름을 따라 들락거리는 내레이션. 나는 시에 대해서 모르고, 이제껏 해석 안 되는 시가 것만도 아니었는데,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막강한 상인'을  풀기 위해 찾아다니는 나. 분명한 건, 그런 내가 좋았다는 거다.  


이 시를 인용하기 위해 <키다리 아저씨>를 읽던 4년 전 밴드를 검색하다 보니, 그때의 나도 웃고 있었다. 열아홉 고아 소녀가 자신의 후견인에게 조잘조잘 늘어놓는 100년 전 대학생활 이야기의 어디가 그렇게 재밌었던 걸까요, 하면서. 그러게. 고아 소녀가 대학에 들어가서 돈 많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는데, 그 남자가 하필 자신의 약점(고아)까지 다 커버해주는 남자였다는, 이렇게 뻔하디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의 어디가 나는 그렇게 좋았던 걸까. 역시 그 시절 밴드에 그 이유도 있었다. 그대로 옮겨본다.


신기하게도 읽는 내내, 한동안 잊고 있던 어떤 감성 같은 게 밀려왔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늘 뒷전에 밀리다 어느새 메말라버린, 오롯이 '나'에게 속한 어떤 것에 대한.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 단단하고 듬직하게 자란 아이들 따위 말고요. 이젠 다시 가져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대학 캠퍼스랄지, (아이들 저녁 메뉴 걱정 없이) 내리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 자리랄지, 다시 글을 써보고 싶다는... 그런 종류의 열망 같은 것이.


아. 4년 전 나는 그게 좋았던 거구나. 내 안에 아직 그런 열망이 살아 있어서.  


정말 그랬다. 아이에서 시작해 아이로 끝나던 10여 년의 세월 동안 나는, 세상에서 저만치 떠밀려 있었다. 결혼 전 내가 아무리 별 취향과 목적 없이 살았다 해도, 그래도 그 삶의 중심엔 내가 있었다. 그런 내가, 나만 생각하며 살던 내가, 10년간 아무런 저항도 없이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서만 살았다니! 남자에게 홀려도 길어야 1년인데, 그렇게 아이는 10년 넘게 나를 홀렸다. 그뿐인가. 아이는 나의 전부를 원했다. 아무 배려도 없는 무자비한 폭군처럼. 복종을 원하는 눈먼 종교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우상이 따로 없었다. 그만큼 아이는 황홀했고, 그 사랑은 감미로웠다. 그 가치에 대해서라면 단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그것이 열망이었냐고 묻는다면? 분명 그것과는 달랐다. 그건 손 쓸 새 없이 이미 주어진 운명에 가까운 것이었지, 온전히 내게 속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떠나보내야만 하는, 그럼 나를 외롭게 할 것이 분명한. 그리고 이제 나는 좀 더 안전한 것이 필요하다. 내가 먼저 보내지 않는 한 헤어질 일 없는, 오롯이 나에게만 속한. 열망이라 말할 만한 그런 것이.    

     

어느 오후 생각이 난다. 조용한 도서관에 앉아 서너 시간째 책을 읽는 중이었다. 그 주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는데, 나는 그 책의 여운이 좀 아쉬워 사강의 또 다른 책 <슬픔이여, 안녕>을 검색하다 동명의 영화를 만났다. 여주인공 역을 연기한 여배우는 '진 세버그'라는 미국 여자였다. 그녀는 일 년 후 또 다른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출하면서 시크한 쇼컷, 당돌함과 순수함이 뒤섞인 매력으로 일약 프랑스 누벨바그를 상징하는 뮤즈로 떠오르게 된다. 그녀가 활동하던 1950-60년은 바야흐로 포스트모던이라는 초유의 '난장'이 시작되던 시기. 젊은이들은 모든 관습과 권위에 도전했고, 억압에 저항하고 자유를 위해서라면 거침이 없었다. 그 기운을 타고 흑인 인권과 여성 인권 문제도 정점을 찍었다. 미국인들의 바이블 <앵무새 죽이기>의 출간과 몽고메리의 '로자 파크스' 사건도 모두 이 즈음의 일이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 전쟁을 끝내고 노예 해방을 선언했던 게 100년 전이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여전히 그 선언대로 살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진 세버그는 백인 여배우로서는 드물게 인권 문제 특히 흑백 문제에 깊이 몸을 담갔다. 흑인 인권운동 단체의 간부들과 가깝게 지내며 물질적 후원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미국 정계는 미국판 매카시즘의 광신이 한차례 불고 지나간 직후였고, 흑인 인권운동의 양상은 복잡했다. 우리가 잘 아는 온건파 '마틴 루터 킹'부터 과격파 '말콤 엑스'까지 들끓었다. 이 용광로 한가운데에서 여배우가 자기 목소리를 낼 때에는 당연히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다. 미국 정부 눈에도 이 여배우의 행보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에 딱 좋았다. 곧 그녀의 사생활을 좇는 FBI의 도청과 감시가 따라붙었고, 그다음은 뻔한 할리우드 스캔들의 문법을 따라간다. 그녀가 남편 로맹 가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흑인이었다는 둥, 알코올 중독과 실종과 자살로 이어지는 루머와 가십의 재생산.


다시 그날 오후로 돌아오면 - 대개의 책 읽기가 이런 식으로 전개됐다. 연하남과의 연애담에서 출발한 배가 천천히 항로를 항해 발동을 건다. 나와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삶을 산 한 여자의 인생과 만난다. 책과 영화를 넘나 들고 픽션과 논픽션이 펼쳐지고, 그렇게 돌아 돌아 마침내 미국 흑백 인종차별의 해안가에 닻을 내리는 식.


나는 이렇게 무한 확장되는 책 읽기의 속성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정말 세상엔 죽을 때까지 읽어도 될 만큼 많은 책이 있었다. 아니, 이런 식이라면 죽을 때까지 읽어도 다 못 읽을 터였다. 그 책의 세계는 막강한 상인처럼 버티고 서 나에게 미소를 보낸다. 네 까짓 게 내게 도전해 보겠다고? 그 세계는 나를 충동하고 동시에 나를 안심시킨다. 적어도 그 세계 안에서라면 나는, 내가 아는 노인들처럼 남은 시간 동안 뭘 할지 모른 채 외롭게 남겨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여행은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 눈이 빨개지도록 검색할 필요도,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 여행 경비를 마련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검은 활자를 따라가며 호기심의 반딧불만 반짝이고 있으면, 시시각각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없이 시작되는 무중력의 여행. 나는 그저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작은 열망들은 다시 세상과 접속했고, 결코 그칠 줄 모른 채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불현듯 브런치에 문을 두드렸다.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글을 썼다. 희미했던 곡조가 화면 위에서 깜빡거리며 어느새 또렷한 가사로 뒤바뀌는 걸 본다. 그건 마치 태초에 신이 내 영혼에 새긴 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그분의 숨결을 더듬어 가며 다시 내 몸에 새겨 넣은 것 같기도 한,


희망의 날갯짓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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