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를 꾸준히 배우다 보면 기본 진도의 마지막인 백카멜스핀과 러츠점프를 배우게 된다. 백카멜 뒤에 플라잉카멜을 배우고 러츠 뒤에는 악셀이 있지만 그건 일단 제외하자.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빙상장은 뒷진도로 갈수록 자세히 배우기가 어려웠다. 제일 마지막 진도이다 보니 배우다 수업 시간이 부족하면 못 나갔다. 그 앞에 진도를 잘 해내지 못해도 못 나갔다.
개인강습과 단체 강습을 동시에 듣고 있었는데 단체 강습에서 나는 혼자 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개인강습 때는 끝까지 나갈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정작 러츠점프를 수업 때 다룬 건 몇 번 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백카멜은 러츠점프보다 더 나가지 못했다.
우리 링크장은 스핀을 원스핀-싯스핀-카멜스핀 순으로 스핀을 배운다. 하지만 카멜스핀을 배울 때 들었던 몇 문장씩이나 되는 다양한 말들을 백카멜을 배우면서는 듣지 못했다. 어쩌다 백카멜까지 수업 때 나가면, 돌면서도 이건 아닌데 싶을 정도로 자세가 매우 안 좋았다. 다리가 너무 많이 내려가 있다던지. 하지만 이상한 자세로 두 바퀴만 돌아도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자세가 안 좋다고 내가 느낄 정도면 보통 안 좋은 게 아니었다. 피겨는 보통 본인이 자세가 좋은지 안 좋은지 잘 모를 때가 많아서다.
수업이 끝날 때면 내가 뭘 배웠나 싶을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꼼꼼하게 봐준다고 생각했는데 몇 달이 흐르면서 강습 환경도 안 좋아졌고 커리큘럼도 항상 똑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많은 영상을 찾아보는 거였고 무조건 오래 연습하는 거였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시간에 도착해서 지상 연습을 하고 종료 시점까지 있다 가는 것으로 주말을 마무리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성인이라고 일부러 느리게 나가는 거 아니냐 했다. 그런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초반에 배우는 건 그렇게도 자세한데 뒤로 갈수록 말이 적어졌으니 말이다.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틈날 때마다 느리게 보며 메커니즘을 익혔다. 거의 혼자 공부했던 거나 다름없었다.
약 2~3개월 동안 주말마다 러츠만 팠다. 그 기간 동안 러츠를 수업 때 나간 기억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성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개인강습 때 러츠까지 나갈 일이 생겼고 첫 시도부터 성공했다. 아직 성공률이 높지는 않아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러츠 되네?라는 말을 남기셨는데 그때부터 러츠를 뛸 때마다 허망함, 공허함이 밀려왔다. 러츠를 잘 안 나가기도 했고 이제껏 선생님이 잡아주셔도 뛰지 못한 적이 많아 두 번 정도 잡아주시다가 그냥 혼자 뛰어 보라 하셨다. 그때마다 포기하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울했고 좀 멍했다. 선생님은 내 점프를 잡아주실 때마다 내가 못 뛰는 이유가 겁이 많아서라하셨다. 하지만 그건 내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분 있다 수업이 끝나버렸고 매번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돈을 더 내며 배워도 안 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 정도면 그냥 단체만 받거나 혼자 연습했어도 딱 이 정도 속도로 늘었을 것 같았다.
결국 혼자 익혀서 성공했을 때 그동안의 서러웠던 마음이 한꺼번에 훅 올라오는 것 같았다. 지금도 뛸 때마다 그때 기분이 올라온다.
허망함.
뛰었는데도 행복하지 않고 절망적인 기분.
결국 강습이 아닌 나 혼자 독학으로 해냈으니 이게 뭔가 싶었다. 주말마다 쉬지 않고 나와 연습하며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왜 늘지 않을까 하며 속으로 삭였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결국 그날 이후로 개인강습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러츠가 아직 안정화된 건 아니지만 나중에 정말 안정화돼도 나는 여기가 끝일 것 같다. 이제 개인강습은 그만두었고 단체강습만 받고 있지만 나 같은 회원에게 악셀이라는 글자는 생각나지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