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가 심해지면 다른 곳에서 짧게 강습을 받아봅니다.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게 다를 수 있고, 안 되었던 게 다른 수업에서 되기도 합니다.
어떤 발레 하는 분이 쓴 글이었다. 피겨는 이곳저곳 다니며 강습받으면 좋지 않다는 말이 많았다. 한 기술이라도 가르치는 방법이 달라서다. 한 예로 내가 초보였을 때 엄청 잘 타셨던 한 분은 한 빙상장에서만 선생님이 그만두셔서 3번 정도 선생님이 계속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뭐가 맞는 건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개인강습을 받았어도 매번 똑같은 커리큘럼. 개인강습을 그만두고 단체강습만 받고 있었지만 독학이나 다름없는 환경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수업도 딱히 기대되지 않아 강습을 가기가 싫었다. 유일하게 가고 싶은 날은 독학하며 새로운 걸 익히는 주말뿐이었다.
다른 곳에서 강습을 받아보고 싶었다. 다른 곳은 어떨까. 내가 다니는 빙상장 주변에는 빙상장이 없어 조금 먼 거리로 이른 아침부터 나가야 했다. 미리 연락을 드린 상태였다. 인터넷을 통해 많이 보게 된 곳.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칭찬이 자자해서 어떻게 가르치길래 그러는지 궁금했던 곳.
그렇게 장장 2시간 40분이 지나 도착했다.
빙상장은 유난히 따뜻했다. 몸을 살짝 시원하게 하는 공기. 들어가자마자 춥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적정한 온도. 이런 온도라면 빙판에 들어가서도 몸을 좀 더 수월하게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2시간 수업을 신청했다. 수업 환경이 상당히 좋았다. 우리 빙상장 같은 경우에는 스피드 강습이 많아 개인강습을 받는 와중에도 원 도는 연습을 하는 스피드 애들과 자리를 나눠 써야 했다. 자리가 좁은 건 물론이고 애들이 하다 넘어지기까지 하니 큰 사고가 안 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조금 더 과감한 연습을 할 수 없다. 좀 더 동작이 큰 스핀이라던지 멀리서 돌아와 뛰는 점프라던지. 개인강습이지만 좁은 공간에서 깨작거리며 타야 했다. 종종 내가 뭐 하는 건가 싶을 때가 많았다.
강습 시간대를 바꿔달라 말씀드리니 돌아온 건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순간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싶었다.
내가 다른 지역까지 강습을 받으러 간 빙상장은 스피드 강습이 별로 없어 처음부터 엣지를 크게크게 쓰며 다니는 연습을 여러 번 할 수 있었다. 엣지를 쓰며 가는 연습은 스케이팅 스킬을 늘리는 기본 연습과도 같지만 공간이 많이 안 나는 우리 빙상장에서는 연습하기 쉽지 않은 것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우리 링크장에서는 2시간 개인강습을 받으면 1시간, 1시간 각각 커리큘럼이 똑같았다. 하지만 이 빙상장 수업은 각 시간마다 어떤 테마가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시간은 스텝만 집중적으로 파는 시간, 어떤 시간은 점프만 집중적으로 파는 시간. 개인강습이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이것저것 다 하는 것과는 좀 달랐다. 차라리 이렇게 좀 더 세부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 같았다. 점프 같은 경우에도 내가 다니는 빙상장은 자세를 잘 안 봐주었다. 예쁘게 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랜딩 후 다리가 빠지는 현상이라던지 그런 것에 대해 일절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이곳은 자세를 정말 잘 봐줬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던 것에 대해 콕콕 짚어주는 느낌이었달까.
기술 메커니즘이 완전히 똑같았던 건 아니었다. 특히 왈츠점프할 때 다리 모양이 좀 달랐다. 내가 다닌 빙상장에서는 뛰기 전 오른 다리를 펴라 했고 이곳에서는 오른 다리를 많이 구부리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선생님이나 저 선생님이나 틀린 건 아닌 거 같았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서 강습을 받아본다는 게 걱정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나름 좋은 경험이 되었다. 처음 보는 강사에게서 내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도 받을 수 있고 말이다.
다른 곳에서 강습받는 건 권태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 빙상장이 가까이 있으면 좋을 텐데 멀어서 한번 가려면 큰 마음먹고 가야 하지만.어쩔 수 없다. 우리 집에서 홈 링크장까지 가는데도 머니 이 정도는 그러려니 해야 한다.
수업을 받으며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어도 빙상인들은 다른 곳을 가기가 어렵다. 빙상장 자체가 많지 않으니까. 그래서 여기 빙상장에서 오래 다닌 분들은 불만사항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강습생들이 서로 이야기할 뿐. 한번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다 들었는데 바뀐 건 없었다. 더 안 좋아졌지.
어느 날은 단체강습이 끝나고 스피드 강사가 피겨 강사에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원 낸 사람이 저 사람이라며? 10년 탔다며? 그럼 그러려니 할 때도 되지 않았나?
나는 그분이 왜 민원을 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피겨를 배우기 전에는 피겨 성인 강습생이 별로 없어 매달 폐강을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피겨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 자기 자리도 챙기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거기다 그 시간대에 스피드 강습도 같이 있으니 가끔 수업 때 스피드분들이 피겨 강습 자리를 통과해가면 무서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분은 갑자기 달라진 환경, 그에 맞춰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 환경에 화가 났을 거다.
강습생이 많아지며 불편함이 많아지고 있지만 바뀌는 건 없다. 이곳은 이전 방식을 고수하며 사람만 채워 넣는다. 선생님도 강습 환경에 대해서는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다였다. 그 말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빙상장이 애초에 많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