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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꽃 Oct 05. 2022

새로운 바람

새로운 스피드 강사가 왔다. 그때 이후로 피겨 강습 환경은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하키, 피겨, 스피드/쇼트는 같은  빙상 종목이지만 빙판 위에 올라서면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나 다름없다. 신발을 신고 있을 땐 서로 웃으며 이야기는 할 수 있어도 빙판 위에서는 '저 종목은 뭐가 문제일까.'이렇게 되는 것이다.


피겨의 입장에서 하키는 얼음을 잘게 부수는 존재다. 빙상장에 사람이 많으면 대여화 신은 사람들이 타는 공간은 얼음 가루로 가득해 앞으로 가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키는 빙질을 그렇게 만든다.

또 하키는 진로를 가늠할 수 없는 이상한 진행 방향을 가진 존재다. 가끔씩은 묘기를 선보이는데 내가 볼 때는 묘기를 선보일 때 사람들의 반응이 유독 좋으면 일부러 더 하는 것 같다.


피겨의 입장에서 스피드/쇼트는 연습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어와 자리를 뺏는 존재다. 점프 뛰려고 멀리 돌아왔다가 원래 있던 곳으로 가다 보면 금세 그 주변을 점령해 원 도는 연습을 하고 있다. 또한 활주 연습을 하며 고깔 안으로 들어올 때가 많아 동선을 잘 살펴야 한다.


내가 들었던 스피드/쇼트 입장에서 피겨는 얼음을 박살 내는 존재, 갑자기 훅 들어오는 존재라 한다. 토를 찍어 뛰는 점프를 할 때면 사람에 따라  낚시하러 온 것처럼 구멍 뚫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걸 말한다. 이건 피겨 타는 사람들도 짜증 난다.

훅 들어오는 건 고깔 밖에서 스피드분들이 활주 할 때 그분들 동선을 계산하지 않고 갑자기 들어와서 위험하게 하는 걸 말한다. 피겨 타는 사람이 아이였을 때 이렇게 하다 부딪혀 사고 나는 걸 몇 번 봤다.




이전까지는 선생님 수업방식에만 불만이 많았다.

그래도 강습 환경은 좋아 단체 강습 때 사람이 많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날에 개인강습이 그래도 기다려지곤 했다.


그런데 스피드 선생님이 새로 오고 나서 고깔 밖에서만 주로 수업하던 스피드 강습생들이 고깔 안으로 들어와 피겨 강습생 주변을 에워싸고 돌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안 쓰는 자리가 있을 때만 하던 행동이었다.


다른 스피드 강사들도 그 강습 방식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강사 두 명이 스피드 강습생들을 데려와 피겨 강습받는 주변에서 원을 도는 일이 잦아고 나는 그들을 째려보는 것 말고는 별 방법이 없었다.


처음에 "여기 와서 한데?"라 했던 선생님도 그다음부터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점프 뛸 때 주변에 스피드 강습생이 있어도 그냥 거기서 뛰라고 할 뿐. 점프는 속도 내며 뛸 때와 느리게 뛸 때 서로 느낌 자체가 다른데 스피드 강습생 때문에 나는 계속 느리게 뛸 수밖에 없었다. 느리게 뛰니 어렵지 않았고 선생님이 잘 뛰었다고 해도 기쁘지 않았다.


단체 강습 자리도 결국 한 군데 뺏기고 말았다. 람이 많을 때면 스핀부터 제대로 하기가 어려워 답답하기만 했다. 수업만 끝나면 스피드 때문에 불편하다는 뒷담화의 장이 이어졌다.


하루는 사람들이 강습받는 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알고 지내 스피드분이 그러셨다.


저 새로 온 강사 있지? 저 강사가 엄청 잘 가르쳐. 스피드 성인반 사람들 요새 다 저분한테 개인강습받고 저 강사 오고 나서 자세 엄청 좋아졌어. 그래서 다른 강사들이 강습 방법 다 따라 하잖아.


'아. 그 이유 때문에 우리 강습이 이렇게 되었구나.'


그 강사의 수업은 피겨인들에게 해가 되었지만 스피드 입장에서 그 강사의 수업은 이랬던 것 같다. 스피드 강습생에게 확실한 자리를 보장! 어떤 일이 있어도 본인이 강습하는 자리를 피겨 강습생들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그 강사는 자신이 수업받는 경로에 다른 강습생이 얼쩡거리는 걸 싫어했다. 자세를 확실히 봐주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확실하게 지키며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게 좋았을 것다.

그 강사가 오기 전에 주말에 수업 받는 스피드 강습생들 고깔 밖에서 피겨 강습생들 피하며 활주하 했다.


피겨는 자리를 뺏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세요." 아니면 "왜 여기 와서 한데?"가 다였다. 스피드는 그 강사의 등장으로 인해 제대로 연습할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 강습권을 바르게 보장해주는 행동이 살짝 부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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