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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꽃 Oct 05. 2022

마지막 진도 후의 허망함

피겨를 꾸준히 배우다 보면 기본 진도의 마지막인 백카멜스핀과 러츠점프를 배우게 된다. 백카멜 뒤에 플라잉카멜을 배우고 러츠 뒤에는 악셀이 있지만 그건 일단 제외하자.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빙상장은 뒷진도로 갈수록 자세히 배우기가 어려웠다. 제일 마지막 진도이다 보니 배우다 수업 시간이 부족하면 못 나다. 그 앞에 진도를 잘 해내지 못해도 못 나갔.


개인강습과 단체 강습을 동시에 듣고 있었는데 단체 강습에서 나는 혼자 타는 거나 마가지였다. 개인강습 때는 끝까지 나갈 시간이 항상 부족했. 정작 러츠점프를 수업 때 다룬 건 몇 번 되지 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백카멜은 러츠점프보다 더 나가지 못했다.


우리 링크장은 스핀을 원스핀-싯스핀-카멜스핀 순으로 스핀을 배운다. 하지만 카멜스핀을 배울 때 들었던 몇 문장씩이나 되는 다양한 말들을 백카멜을 배우면서는 듣지 못했다. 어쩌다 백카멜까지 수업 때 나가면, 돌면서도 이건 아닌데 싶을 정도로 자세가 매우 안 좋았다. 다리가 너무 많이 내려가 있다던지. 하지만 이상한 자세로 두 바퀴만 돌아도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자세가 안 좋다고 내가 느낄 정도면 보통 안 좋은 게 아니었다. 피겨는 보통 본인이 자세가 좋은지 안 좋은지 잘 모를 때가 많아서다.


수업이 끝날 때면 내가 뭘 배 싶 때가 많았다. 음에는 꼼꼼하게 봐준다고 생각했는데 몇 달이 흐르면서 강습 환경도 안 좋아졌고 커리큘럼도 항상 똑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많은 영상을 찾아보는 거였고 무조건 오래 연습하는 거였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시간에 도착해서 지상 연습을 하고 종료 시점까지 있다 가는 것으로 주말을 마무리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성인이라고 일부러 느리게 나가는 거 아니냐 했다. 그런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초반에 배우는 건 그렇게도 자세한데 뒤로 갈수록 말이 적어졌으니 말이다.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틈날 때마다 느리게 보며 메커니즘을 익혔다. 거의 혼자 공부했던 거나 다름없었다.


약 2~3개월 동안 주말마다 러츠만 팠다. 그 기간 동안 러츠를 수업 때 나간 기억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성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개인강습 때 러츠까지 나갈 일이 생겼고 첫 시도부터 성공했다. 아직 성공률이 높지는 않아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러츠 되네?라는 말을 남기셨는데 그때부터 러츠를 뛸 때마다 허망함, 공허함이 밀려왔다. 러츠를 잘 안 나가기도 했고 이제껏 선생님이 잡아주셔도 뛰지 못한 적이 많아 두 번 정도 잡아주시다가 그냥 혼자 뛰어 보라 하셨다. 그때마다 포기하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울했고 좀 멍했다. 선생님은 내 점프를 잡아주실 때마다 내가 못 뛰는 이유가 겁이 많아서라하셨다. 하지만 그건 내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분 있다 수업이 끝나버렸고 매번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돈을 더 내며 배워도 안 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 정도면 그냥 단체만 받거나 혼자 연습했어도 딱 이 정도 속도로 늘었을 것 같았다.


결국 혼자 익혀서 성공했을 때 그동안의 서러웠던 마음이 한꺼번에 훅 올라오는 것 같았다. 지금도 뛸 때마다 그때 기분이 올라온다.


허망함. 

뛰었는데도 행복하지 않고 절망적인 기분.

결국 강습이 아닌 나 혼자 독학으로 해냈으니 이게 뭔가 싶었다. 말마다 쉬지 않고 나와 연습하며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왜 늘지 않을까 하며 속으로 삭였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결국 그날 이후로 개인강습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러츠가 아직 안정화된 건 아니지만 나중에 정말 안정화돼도 나는 여기가 끝일 것 같다. 이제 개인강습은 그만두었고 단체강습만 받고 있지만 나 같은 회원에게 악셀이라는 글자는 생각나지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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