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좋아해서 영어통번역학부에 지원했다. 지긋지긋한 수능 입시에 이어서 또 공부를 해야한다면 나는 영어만 하고싶었다. 대학 입학원서 쓰는 기간에 처음으로 혼자서 나의 삶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꿈과 포부를 적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최종 과정까지 인터뷰를 거쳤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싶은지도 분명했다. 나는 누구보다 확신에 차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내 필통에 붙어있던 대학교 스티커는 딱 하나. 한국외국어 대학교였다. 꿈에 그리던 대학, 그리고 학과에 가게 되다니.. 학교와 집은 거리가 멀었다. 학교 입학 전 기숙사에 신청했고, 2인 1실에 배정받았다. 신입생 OT에도 다녀왔다. 같은 학번 친구들끼리 단톡방이 있었고, 또 자주 보다보니 대여섯명은 친해진 거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들과 매일 보는 건 아니었다. 매일 같은 반 친구들과 수업을 듣던 고등학교와는 너무 달랐다. 수강하고싶은 과목, 시간표 구성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하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업을 들었다. 대학교 캠퍼스는 너무 낯선 세상이였고 아무리 둘러봐도 모르는 사람들 천지다. 길 잃은 어린이가 된 거 같았다. 기숙사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다.
여긴 나랑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이 없었다. 전국 각 지역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이였다. 동갑인 1학년부터 2, 3, 4학년, 그리고 복학생까지 있었다. 영어전공을 선택해서 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저들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일까?? 선배, 동기, 후배들까지 모두 나의 경계 대상이었다. 처음으로 동기들이 다 모이는 OT날은 잔뜩 긴장이 되었다. 주변을 슥 둘러보니 내 동기들은 어릴 때 미국에 가서 살다온 친구, 입학때부터 토익 만점인 친구,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이다. 영어가 너무 편안해보이는 친구들 사이에 나 혼자 껴있었다. 마치 호수 위 하얀 오리들 무리에 미운 오리새끼 한 마리가 덩그러니 있는 것처럼. 나 혼자 달랐다. 소외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