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대학교는 학교 특성상 다양한 국가의 원어민 교수님들이 있다.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브라질어, 태국어, 스와힐리어 등등. 우리 과는 영어과이기 때문에 영국, 미국, 캐나다 교수님이 대부분이었던 거 같다. 우리과 교수님중에 겨울왕국의 눈사람과 이름이 같은 교수님이 있었다. 올라프. 올라프는 금발 머리를 한 남자교수님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올라프는 캠퍼스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네주었다. 거의 스쳐지나가듯 한 순간이지만 그 사이 인사를 빼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올라프의 인사는 항상 똑같다.
Hi, How are you! + 스마일
아주 담백한 한 마디. 그런데 매번 같은 인사를 듣지만.. 매번 아무 말을 건네지 못했다. 하.. 거의 1, 2초에 가까운 시간동안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 올라프의 인사는 늘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안부를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가벼운 안부인사인지, 또 너무 가볍게 대답하면 내가 너무 예의없게 말한 것인지.. 우물쭈물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괜히 심장만 쿵쾅쿵쾅 뛰다가 얼굴이 토마토가 된다. 올라프는 내가 아주 소심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때 교과서, 모의고사 대비 문제집을 수도없이 읽고 풀었다. 숙제를 열심히 하고 단어시험을 더 잘 보기 위해 달달 외웠다.. 그런데 왜 나는 영어로 한 마디도 하지 못할까? 누가 영어로 말을 걸면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진다. 지금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까지는 일방적인 읽기를 해왔었다. ‘영어를 잘 한다’의 의미는 시험에서 더 많은 문제를 맞는 것,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었다. 내 생각의 한계도 거기까지였다. 수능이라는 틀을 벗어나 삶에서 ‘영어를 잘’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심지어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수능이라는 알을 깨고 나와 마주한 세상은 너무 넓고 너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