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일상은, 단조로운 계절을 닮아서요

시골살이-26

by 윤에이치제이

큰 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바깥을 향해 저절로 시선과 마음이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깊어지면서 추위가 제 몫을 하니 바깥의 모든 것들이 빛깔을 잃고 활기를 잃었다 색은 잿빛으로 단순해지고 움트고자 하는 에너지도 찾아볼 수 없다 꽃이며 나무는 물론이고 징글징글하다 했던 잡초의 질긴 초록 근성도 사라졌다 흙과 바위처럼 생명을 잃은 듯 색과 태를 지운 바깥 풍경은 그래서 너무나도 단조로워졌다

색이라고는 인위적이거나 자연에 속하지 않은 것 빛바래기는 하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주어진 색을 고수하는 사물의 것뿐이다 대나무가 가까스로 바랜 초록을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쓰지만 보는 시선엔 무채색의 풍경에 더 잘 묻어나는 모습이 좀처럼 생기 있지 않다


나 역시 날씨 때문에 외출하는 일도 줄어들고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도 많이 꺾인 상태다 시골에서의 일상이 시골 주변의 활기와 필시 깊은 관련이 있다고 다면 깊은 겨울 속의 시골집의 일상은 일시정지 된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의 나의 일상은 아주 단조롭다 다른 계절보다 느지막이 일어나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루틴을 겨우 해내고 느지막이 먹는 아침 식사 모든 게 게을러지고 뒤처져 있다 툇마루에 볕이 드는 시간에 햇빛 아래에서 책을 읽는 기쁨은 유효하지만 해가 머무는 시간이 짧아진 탓에 기쁨의 양과 질도 줄어들었다 금세 해가 넘어가고 금세 깜깜한 어둠이 찾아오고 그러면 활동적인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자꾸 방 안에 이불속에 몸을 파고든다 그리고 다음 날도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가 반복된다


단조로운 일상이 겨울을 닮았다 계절의 영향을 받는 것은 억측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내 경우는 분명하게 이곳에서 보다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의지할 데라고는 내 집과 내 주변 풍경뿐인데 가동을 멈춘 공장처럼 을씨년스러우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집안에 머물며 겨우 하는 일들로 국한될 수밖에 시골살이의 모든 시간을 온통 아름답게 바라보고 싶지만 겨울의 이런 모습 이런 기분까지 애써 예쁘고 사랑스럽게 거짓 행복으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시골에서 살겠다 했을 때 염려하듯 돌아온 현실적인 조언들 현실적인 대답들 그것들과 틀림없이 다르지 않은 시골에서의 겨울은 차갑고 어둡다 어떤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그 종류와 형태만 다를 뿐 어디에서 건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일이고 여기서는 겨울이라는 계절을 견디는 것이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눈이 내린 그 하루는 달랐다 눈발이 날리다 모습을 감춘 첫눈 내리던 날과는 달리 한파가 몰아치던 어느 날 오후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내린 눈은 화려한 색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겨울의 색을 남겨두고 갔다 해가 사라진 밤 어둠 속에서도 해가 떠오르는 아침 응달진 구석에서도 실상은 차가울 테지만 포근하고 따뜻한 하이얀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래 이 계절은 단조롭고 그 계절에 속한 나의 시간도 단조로워졌지만 그래도 가끔 특별한 한 순간 때문에 견디지 못할 것 같은 힘듦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미소를 되찾곤 하지 사는 게 그렇다는 것을 늘 반복하며 배우고 있으면서도 아는 것과 상관없이 좌절하고 가라앉는 마음을 위로해 주는 그 한순간이 그 때문에 중요하다


그 순간을 선물 받는 것은 나의 의지에서 벗어난 일이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내 몫의 의지 그러니 큰 창을 가진 덕에 늘 보는 바깥 풍경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의지를 찾아내 볼까 비록 수도가 얼어 물이 나오지 않고 오래된 흙집의 웃풍에 취한 사람 마냥 종일 코가 빨갛게 색을 입고 있어도 말이다 꽁꽁 언 수도관이 영영 제 구실을 하지 않겠다 하는 것도 아니고 무채색 겨울 닮은 흙빛 안색의 내게 생기를 주었다 치면 되겠고 그러다 보면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바깥에서부터 내게로 단조로움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봄의 리듬이 자연스레 스며들겠지


참으로 이른 바람이다 아직

겨울의 한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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