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는 필요 없어요
봄이 부쩍 다가온 이후로 거의 매일 5천보 이상 걷는 내가 기특하다. 작년엔 밖에 나가 5분 걷는 것도 힘들었고 한창 재택 할 땐 일주일 동안 아예 집 밖을 안 나가기도 했는데!
이젠 목적 없이 15분 이상 산책하는 것도 거뜬하고, 왕복 1시간 거리를 나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많이 걸은 날엔 여전히 허벅지며 무릎이며 발바닥이 아프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뛰는 것도 아니고 하루 5천보 걷는 게 별일 아닐 수 있지만. 갭이어를 갖는 동안 남들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건 덜 하려고 마음먹었다.
오늘도 내게 더 친절해지자고 다짐한다. 내 기준에서 큰 변화고 성장이라고, 잘했다고 기특하다고 스스로 말하며.
- 2023년 3월 9일 일기에서
구독자님께 쓰는 열두 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문프랜입니다.
오늘도 잘 지내셨나요?
오늘 꺼내 본 일기는 갭이어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봄을 맞이할 때 썼어요. 날이 풀리면서부터 산책을 더 멀리 더 오래 하게 되어 뿌듯한 마음으로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 5천보 걷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제 기준으로는 엄청난 발전이었거든요.
지난 5화 '모든 이유를 나에게서 찾으려는 습관'에서도 말한 적 있듯이 저는 남에게 너그러워지는 건 쉬운데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일은 참 어려워했어요. 조금 우쭐해지려고만 하면 '그게 정말 객관적으로 잘한 거야?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 이미 수두룩한데?' 같은 냉정한 마음의 소리가 바로 따라붙었거든요. 정작 남들은 저한테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말이에요.
특히 번아웃을 겪고 퇴사했을 때 저는 제가 회사 생활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작년에 영화 <리바운드>를 인상 깊게 보고 나서 감독과 배우들의 관련 인터뷰를 찾아 읽다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문장을 만났어요.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자신의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자신의 벽을 만날 때까지 열심히 한 거니까 거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 배우 김민, 씨네21 인터뷰 중에서
한계에 부딪힌 게 실패가 아니라, 내 벽을 만날 때까지 열심히 한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는 말. 너무나 아름답지 않나요?
그러니 저 역시 실패한 게 아니라 한계에 부딪혔을 뿐이고 벽을 만났을 뿐이에요. 길을 걷다가 벽을 만났다는 건 다시 말해 내 세상의 끝까지 와봤다는 뜻인 거죠. 내 선에서 최선을 다 했으니, 나를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칭찬하고 기특하게 생각할 일이에요.
생각해 보면 내가 나를 채찍질했던 바탕에는 전부 '남을 의식한 기준'이 있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남들이 어디까지 해내는지를 더 신경 썼던 거죠.
그런데 사실 남이랑 비교하면 끝이 없잖아요. 남들을 다 제치고 최고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요.
애초에 "나는 최고가 될 거야!"는 목표가 될 수 없어요. 여럿 사이에서 최고를 가리려면 무언가 기준이 필요한데, 시험을 쳐서 1등부터 꼴등까지 성적이 나오는 학교가 아니고서야 대체 누가 무슨 기준으로 줄을 세우겠어요. 특히 요즘처럼 관심사가 세분화된 세상에서는 모두가 합의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기도 어렵고, 그게 그렇게 의미 있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최고가 될 것도 아니고, 최고를 누가 판단할 수도 없는데 왜 자꾸 남을 의식할까?
그래서 적어도 갭이어 기간에는 기준을 내 안에 두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남을 의식한 기준이 아닌 오직 나만의 기준으로요.
그래도 꼭 비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는 요즘 '남'이 아닌 '과거의 나'를 비교군으로 떠올려요. 1년 전,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더 나아진 모습이 꼭 하나씩은 보이더라고요. 하다 못해 산책이라도 더 많이 한 것처럼요!
그리고 그런 걸 발견하고 나면 호들갑스럽게 나를 칭찬해 줍니다. 제가 찾은 '나에게 더 친절해지는 방법'이에요.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 구독자님도 남을 의식한 기준에 얽매여 있다면, 오직 나만의 기준을 발견하기를 바라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오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열심히 글 쓴 나를 기특히 여기며,
프랜 드림.
추신.
구독자님이 생각하기에 '나 이거 잘한다!' 하는 게 있나요?
객관적인 기준과 공정한 평가는 필요 없어요. 오롯이 구독자님만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나 이거 쫌 잘하는 듯?' 싶은 게 있다면 이번 기회에 마음껏 자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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