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카메라에 관한 단상
가장 중요한, 가장 소중한, 가장 잊지 못할 순간들을 남겨주는 카메라
간혹 어떤 이들이 "어떤 카메라가 제일 좋은 카메라인가?"를 내게 묻곤 한다. 한 때는 유명한 카메라와 사진 사이트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카메라를 비교해보고 심지어 전혀 안면이 없는 이들에게까지 카메라를 추천해주곤 했었다. 비슷한 기종들끼리 성능이나 화질, 색감 등을 비교해보고 조금이라도 만족할 만한 카메라를 추천해주었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카메라를 추천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원하는 카메라가 정해져 있었다. 휴대성이 좋은 소형 카메라, 성능과 편의성을 동시에 지닌 하이엔드, 조금 더 전문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렌즈 교환식. 디자인이 모던하든지 클래식하든지, 어느 잡지나 사이트에서 봤던 그 사진의 하늘색이나 피부색을 내주는 카메라 등. 자신이 갖고 싶은 카메라는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카메라가 정해지고 나면 예외적인 몇 사람을 빼고는 모두들 자기 카메라가 제일 좋은 줄 알고 사용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의 특성 때문에, 사역의 초기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그로 인해 나이 서른에 간이 망가졌다. 아내는 "스트레스를 좀 풀어보라."며 카메라를 한 대 사주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사진을 참 좋아했다. 늘 카메라 하나 갖고 싶었지만 우리 가정 형편에는 지나친 일이었다. 아내의 권유로 큰 결심을 하고 카메라를 한 대 장만했다.
당시 보급형 DSLR이라는 이름으로 캐논 300D가 출시되었지만, 그 가격이 우리 형편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래서 하이엔트 카메라에 눈을 돌렸다. 소니 717, 캐논 PRO1, 니콘 5700 등 쟁쟁한 경쟁기종들을 모두 염두에 두었지만 나는 왠지 후지카메라인 S7000에 마음이 갔다. 내가 보기엔 가장 카메라답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S7000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 주위 사람들이 "이것도 디카인 가요?"하고 물을 정도로 희귀한 물건이었다. 경통을 달고 다니면 렌즈 교환식 카메라처럼 생긴 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 주목을 많이 받았다.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이 카메라의 성능은 놀랄만하다. 2003년에 나왔음을 감안할 때, 엄청난 성능과 기능을 갖고 있다.
완벽한 수동 기능에 ISO는 160~800, 지금도 어디 가서 홀대받지 않을 1200만 화소에, 1Cm 접사 기능, 최대 개방 2.8의 조리개, 게다가 셔터스피드는 무려 1/10000초다. '천분의 일'이 아닌 '만 분의 일'초다. 지금도 가끔 이 녀석으로 찍은 RAW 파일로 작업을 해보면 계조 표현에 깜짝깜짝 놀란다. 암부뿐만 아니라 명부에서도 '이건 분명 못 살려.'하는 화이트홀에도 이미지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경탄하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카메라의 성능들이 의미하는 게 무언지 전혀 모르고 사진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여느 DSLR보다 이 카메라가 훨씬 좋은 줄 알았다. 늘 아끼고 지니고 다녔다. 핸드 스트랩을 구입해서 아예 오른손에 묶고 다녔다. 동네 슈퍼에 과자 한 봉지를 사러 가도 늘 들고 다녔다. 잠을 잘 때도 손이 닿을 만한 곳에 늘 두고 잤다.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내 몸의 일부처럼 생각됐다. 일 때문에, 혹은 사정상 카메라를 두고 가야 할 때는 왜 그리 손이 허전하던지...
아마도 나만큼 이 카메라를 사용한 사람은 없지 싶다. 이 카메라를 설계한 사람도 나처럼은 안 써봤을 거다. 셔터, 조리개, 플래시 등을 비롯한 모든 수동 기능에 후막 동조나 다중노출 같은 기능까지 사용해보지 않은 기능이 하나도 없고, 모르는 기능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셔터 렉 조차도 감각적으로 길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날아오르는 시간과 셔터 렉을 계산하고 수동 초점을 이용해서 꽃잎 위에서 날아오르는 벌에 정확히 초점을 잡을 정도였다.(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카메라를 써본 사람은 알 거다.) 덕분에 어려울 수는 있지만 못 찍는 사진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내 카메라가 제일 좋은 줄 알고 있다가, 우연히 캐논의 카메라 5D와 24-105L 렌즈의 조합을 사용할 기회가 생겼다. 꽤나 멀리서 날아가는 잠자리에 초점을 맞췄는데 한 번에 찍혔다. 그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카메라가 그리 성능 좋은 카메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CCD가 수명을 다해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었을 때까지 S7000은 내게 제일 좋은 카메라였다. 지금은 차마 버릴 수 없어, 언젠가 다시 부활해 사진을 찍을 것처럼, 내 책장 하나를 차지하고 전시되어 있다.
얼마 전에 오래된 이미지들을 정리하면서 내 생애 첫 디카와 지냈던 시간들을 복기(復棋)해봤다. 그러면서 '좋은 카메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당시 찍었던 사진들은, 객관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생애에 이보다 더 좋은 카메라는 앞으로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픈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었던,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 선물로 준, 내게 또 다른 우주와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한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일상을 기록해주었던, 앞으로 없을 소중한, 가장 좋은 것을 함께 공유한 카메라. 칠천이는 내게 그런 카메라였다.
어떤 카메라가 제일 좋은 카메라일까?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가장 좋은 카메라는 가장 좋은 순간을 기록한 카메라가 아닐까? 제일 중요한, 제일 소중한, 제일 잊지 못할 순간을 남겨주는... 그런 카메라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카메라다. 성능이나 모양, 가격 등 외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의미이기 때문이다. 잘 찍은 사진에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지만, 결국 눈물과 감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의미 있는 사진인 것처럼, 제일 좋은 카메라는 의미 있는 순간을 찍은 의미 있는 카메라다.
어떤 카메라라도 좋다. 나는 소중한 순간에 꺼낼 수 있는 카메라가 제일 좋은 카메라라고 말한다. 심지어 폰카라도 언제든 가까이에 두고 꺼내 가장 소중한 순간을 찍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제일 좋은 카메라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