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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Feb 11. 2021

42일 : 향수

고체 향수를 바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근 꽂힌 물건은 고체 향수다. 말 그대로 크림 형식으로 된 향수를 몸 곳곳에 바르는 건데, SNS만 둘러봐도 비슷한 고체 향수들이 꽤 많이 출시되어 있다.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들이 즐비하지만 도대체가 향을 맡아볼 수 없으니 판매자가 글로 표현해 놓은 것만 보고 잘 판단해서 구입해야 한다. 향을 냄새로 맡는 것이 아니라 글로 읽어서 판단한다는 게 꽤 모순적이고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들의 구매평을 보면 대충 어떤 느낌의 향일지 감이 온다. 여러 가지 중에서 몇 개를 추려 고민을 거듭했는데, 그중 가장 재밌는 표현은 '이성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향'이라는 거였다. 내 마음대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그 향수를 바르면 이성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는 표현이었는데 굉장히 자극적인 문구여서 다시 한번 읽어보긴 했다. 그러나 그 향수는 사지 않았다. 그럴 리 없으니까. 과대광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세 가지 향을 세일가로 모두 가져가라는 브랜드의 크림 향수를 구입했다. 과연 어떤 향일지 너무 기대가 돼서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세 가지 향을 몸 이곳저곳에 발라보았다. 기존에 내가 뿌리고 다녔던 향보다는 묵직함이 느껴졌다. 꽤 무게감이 있고 깊은 느낌. 꽤 매력적인 향이었고 세 가지 모두 다른 매력을 가진 향수여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단점은 지속력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소개되어 있기로는 4-5시간 유지라고 했으나 정작 어제 하루 종일 발라본 결과 1-2시간을 채 넘기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향에 집착하는 편이다. 그래서 몸에 뿌리는 기본 향수를 비롯해 정수리에서 향긋한 내음이 풍기길 바라며 헤어 미스트를 사용하고, 바디 미스트도 무조건 향이 좋은 걸로 선택한다. 핸드크림을 살 때도 웬만한 질감(?)이면 향을 우선시한다. 헤어 오일이나 샴푸, 바디워시, 바디크림 등 모든 것의 기준은 향이다.


그런데 향이라는 게 하나하나는 너무 좋을지라도 섞였을 때 최악의 조합일 경우, 뿌리지 않는 편이 나을 정도로 역할 수 있다. 또한 너무 진하고, 독한 향수를 온몸에 샤워하듯 뿌리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조금은 할 필요가 있다. 가끔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 때문에 멀미가 나기도 한다. 내 기준 향수의 적정량은 뿌린 후에도 한참 동안 내 코에 냄새가 닿으면 너무 많이 뿌린 것이고, 스치듯 향이 올라오는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느낀다. 남들이 느끼기에도 그리 역하지 않은 정도의 양, 딱 그 정도만 뿌리는 것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크림 향수는 꽤 매력적이다. 엄청나게 역한 향도 아닐뿐더러 지속력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간편하게 휴대용으로 들고 다니며 구석구석에 소량을 발라주는 게 참 좋다. 그런데 오늘 만난 남사친이 입술에 바르는 모 회사의 립밤 향 같다는 피드백을 주어 '거기 꺼 아니라고! 이건 훨씬 좋은 크림 향수거든!?'이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그러나 나는 괜찮았다. 아직 내 방에는 다른 두 가지 향의 크림 향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로만 이러고 이미 상처받음)


글을 쓰다가 좋은 향이 맡고 싶어져서, 크림 향수를 팔목에 바르고 타이핑을 치고 있다. 타이핑을 치기 위해 손을 계속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향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꽤 매력적이면서도 도시적인 느낌의 크림 향수. 지속력이 길지 않아 수시로 발라주다 보면 금방 새 제품을 사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상태로는 얼마 전에 산 고체향수를 후다닥 쓰고, 또 다른 브랜드의 고체 향수를 사게 될 것 같다. 사고 싶은 고체 향수가 널렸다. 이쯤 되면 스스로도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 향기에 집착하고, 왜 갑자기 고체 향수에 꽂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혹시 좋은 향, 추천할 만한 향을 지닌 고체 향수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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