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일 : 독립의 시기
자취 로망이 다시 생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작년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3개월간 자취라는 걸 해봤다. 언니나 동생의 경우 대학생활을 타지역에서 하면서 떨어져 살았던 적은 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집 밖에 나가 살았던 적이 없다. 그런 나에게 자취라는 건 신기하고 기대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모두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게 낯설고 걱정스러웠다.
밥을 해서 먹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자취를 시작한 첫날부터 쉬운 일은 없었다. 그러나 왕복 3시간이라는 출퇴근 시간을 고려했을 때 가장 좋은 점은 1시간 전에 일어나서도 출근이 가능하다는 점이었고,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해도 택시비가 아주 조금 든다는 것이었다. 자취 생활의 장점에 푹 빠진 한 달은 유레카를 외치며 살림 장만에 돈을 마구마구 썼던 기억이 난다.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사다 보니 집에 있을 때와는 달리 하루하루 드는 돈의 액수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날 즈음 자취의 단점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보다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그때 굉장히 바쁜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밤늦게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길에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집 앞에서 전화를 끊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불이 다 꺼진 조용한 집이 나를 맞이했다. 유독 방음이 잘 됐던 그 집은 옆집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고, 시간대에 상관없이 모든 불을 다 켜고 TV를 켜는 것으로 나의 귀가를 알렸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예능, 드라마뿐 아니라 아침 방송부터 시사, 교양까지 모든 프로그램을 섭렵했었다. TV를 켜지 않으면 그 적막함에 잠이 들기까지 너무 외로워서 뜬 눈으로 몇 시간을 지새웠다. 그나마 TV는 거실에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잠에 들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면 정말이지 '이것이 고요함이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정말 이 집에 나 혼자 살고 있다는 걸 명확하게 깨닫던 순간. 불면증을 모르던 지난 세월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기본 한 시간은 빈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다가 잠에 들었다.
그렇게 3개월 후 집에 돌아오던 날, 나는 마치 긴 여행을 마친 사람처럼 내 방에서 깊은 잠을 잤다고 한다. 다음 날 오후까지 오랜 시간을 꿈을 꾼 사람처럼. 그렇게 나는 자취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와 잘 맞지 않는다며, 그냥 나는 집에서 살다가 결혼을 해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부모님과 형제들은 나의 선언에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 행복을 위해 그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얼마 전,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취향과는 상관없이 이 나이가 되면 나가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가끔 남자 친구들은 자취를 하라고 종용하면서 응큼하다고 눈을 흘기면 다른 뜻이 아니라 내 나이에 부모님과 사는 것보다는 홀로 서는 것이 낫다는 둥, 그래야 결혼해서도 힘들지 않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인다. 남자들의 말은 그러려니 했으나, 주변 지인들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나와 사는 걸 지켜보면서 나도 늦기 전에 독립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조급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의 말처럼 독립의 시기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친구들은 나오면 고생이고, 돈 버리는 일이라며 차라리 차를 사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그것도 고려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장롱면허 소지자로서 솔직히 자신이 없다. 운전 연수를 꽤 많이 받아야 가능할 일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차는 소모품이라 여기기에 크게 내키지 않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지금 독립을 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느낌이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봐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방금 앞 문장의 점을 찍으면서 그 시절 느꼈던 외로움이 훅 떠올라 긴 글을 싹 지울 뻔했다. 독립의 시기고 나발이고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