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술 전시회를 다녀왔다. 사실 예술 쪽에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라서 대단한 지식도 없고, 무슨 관점으로 관람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자주 찾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흥미를 끄는 전시회가 생기면 지인들과 찾아보는 편이다. 어제 찾은 미술 전시회는 헤르난 바스의 <모험, 나의 선택>이라는 전시였다. 헤르난 바스는 미국 마이애미 출신의 쿠바계 회화 작가로, 특유의 색채가 돋보이는 작가로 유명하다. <모험, 나의 선택>이라는 전시는 최근 BTS의 RM이 다녀가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전시회장에는 작가의 2007년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 차례로 전시되어 있었다. 어떤 내용의 작품들인지 궁금해서 도슨트 시간을 맞춰 갔고, 30분에 걸쳐 들은 내용 덕분에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확실히 높아졌다. 헤르난 바스는 고전문학, 영화 등 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유명 배우도 등장하고, 고전 문학에서 등장했던 인물이 작품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상상 속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가 그림에 담겨있기도 하고, 현실을 빗대어 그림에 녹이기도 한다.
헤르난 바스는 어릴 적 경험, 추억, 환상, 공포 등을 작품에 투영했다. 특히 2010년 전후 작품에서는 인물을 제외한 풍경이 모두 추상적인 느낌으로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풍경 속에서 인물을 애써 찾아야만 하는 작품도 존재한다. 2009년 작품인 <생각의 흐름>이 대표적인 예인데 그 작품을 보면 소년의 주변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점점 멀어질수록 흐릿하게 번져간다. 마치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담긴 이야기처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물들은 점점 작품의 중심부에서 명확하게 묘사된다. 그 과정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헤르난 바스 The Thought Flow(Cabin at Walden) <생각의 흐름> 2009
작가는 성소수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플라밍고가 자주 등장하는데 나는 신비로운 핑크색을 띤 플라밍고가 동성애를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그리고 헤르난 바스가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고자 하는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9년 작품인 <저항>에서는 과거 미국 사회가 동성애자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는지 느끼게 했는데,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림에서 동성애자를 배척하는 곳으로 등장한 바(BAR)가 현재는 아주 유명한 게이바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헤르난 바스 Pink Plastic Lures <분홍 플라스틱 미끼 새> 2016.
헤르난 바스 The Sip in Sip-in <저항> 2019.
이번 관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색채였는데, 그간 보아왔던 미술 작품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색채를 이렇게까지 많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랍기까지 했다. <구루> 라는 작품은 한참을 들여다보게 할 정도로 색채가 너무나도 따뜻했고, 전반적인 그림의 분위기가 매혹적이었다. 특히 그림 속에 나오는 식물이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어서 생과 사로 표현된다는 점도 참 인상적이었다.
헤르난 바스 The Guru <구루> 2013-2014.
전시회를 함께 간 이들과 한 그림 속에 표현된 부분을 두고 무얼 나타내고 싶어 했을까를 의논했다. A는 꿈, B는 분노, C는 복합적 내면을 표출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보는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리고 우리는 전시관에서 나와 맥주를 홀짝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작품, 소장하고 싶은 작품에 대해 랭킹을 뽑기까지 했다.
가끔 이렇게 전시회를 가면 어떤 분야든 공부가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느낀 점은 역시 나 같은 성향의 사람은 도슨트 투어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상상력을 방해한다는 이도 있지만, 나는 도슨트이 길잡이가 되어주어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꽤 흥미로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