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일 : 한국사람
맥도널드에 덩그러니 놓인 카드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과 저녁을 먹으러 맥도널드에 갔다. 가볍게 먹기 위해 들른 곳이었는데 역시나 또 푸짐한 한 상을 먹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는 맥도널드 매장은 좌석이 띄엄띄엄 있어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세 명이서 넓은 테이블을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창가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바(BAR) 테이블의 맞은편 자리였는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나 혼자 온 손님들이 앉기에 최적화된 자리였다. 콘센트 구멍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인기가 많은 자리였다.
그런데 한자리만 유독 사람들이 앉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슬쩍 그 자리를 보았는데, 테이블 위에 영수증 종이와 신용카드 한 장이 올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주문을 하고 자리를 맡기 위해 올려놓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신용카드로 자리를 맡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에 지켜보기로 했다.
후배 중 하나는 쟁반 아래에 놓아두었던 카드와 영수증을 깜박하고 쟁반 그대로 반납하고 갔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후배는 어릴 적 보던 '양심 냉장고'를 다시 하고 있는 거 아니냐며 카메라를 찾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약 1시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카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자리를 탐내고 달려오던 사람들도 누군가 자리를 맡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거침없이 물러섰다. 심지어 직원이 테이블 정리를 하면서 몇 번을 오갔지만 카드를 가져가는 직원은 없었다. 결국 후배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직원에게 '카드가 테이블에 놓여 있는데 누군가 두고 간 거 같으니 챙기셔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가끔 카페에 가면 카공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도 '젊은이 놀이'라면서 한두 번 따라 해 보았지만 조용한 곳에서만 일이 되고 글이 써지는 편이라 영 불편하고 집중이 안 돼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을 보면서 정말 신기한 건 잠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비싼 노트북, 지갑, 휴대폰, 에어 팟 등을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놓고 다니지만, 누구도 그 물건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국인들이 그런 대화를 했다.
- 한국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놓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외국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옆 사람과 모르는 사이인데 서로가 자리를 비우면 주인 대신 옆 사람의 물건을 지켜주는 것이 기본 예의처럼 통하는 나라다.
외국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일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 카페에서 테이블 위나 의자 위에 무언가가 올려져 있으면 '자리가 있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물건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마치 맥도널드 테이블 위에 신용카드가 올려져 있었지만 그 누구도 만지지 않은 것처럼. 물론 신용카드라는 것이 나쁜 마음을 먹고 훔쳐 써봤자 바로 걸리기 때문에 더더욱 건드리지 않았을 수 있지만, 그래도 모두가 외면하고 돌아서는 그 광경은 정말 잊을 수 없다. 만약 그 자리에 노트북이나 휴대폰이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집에 가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들의 이런 특징이 요즘 종종 볼 수 있는 무인 가게의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요즘 무인 가게는 대부분 카드로 결제를 하지만 심지어 돈을 넣는 박스가 특별한 장치도 없는 그냥 박스인 경우에도 훔쳐 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리고 무인 가게에 있는 물건들 역시 훔쳐 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도처에 깔려 있는 CCTV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사람 특유의 시민 의식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참 재밌고, 특이한 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