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일 : 부족한 것에 대한 열망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몽상가 J

작가들을 만났다. 선배와 후배가 섞인 자리.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진지하게 작가 인생에 대해 논하게 되었다. 서로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다 보면 으레 그렇듯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하면서 내 처지를 한탄하기에 이른다.


A는 현재 기획 회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영 답이 나오지 않는 회의라서 답답함을 호소하며 프로그램 론칭만 되게 해달라고 말했다. B는 계속해서 특집 프로그램만 하다 보니 레귤러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그런 자리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C는 프로그램 아이디어는 있는데 자신을 부르는 피디가 없다며 자신을 찾아주는 피디가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D는 현재 하고 있는 레귤러 프로그램의 피디가 너무 지랄맞아서 좋은 피디가 있는 팀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간절한 바람을 드러냈다.


C는 A가 부럽다고 했다. 답 없는 기획 회의를 하고 있지만 A는 피디라도 있으니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는 거라고 했다. 듣고 있던 A는 있으나 마나 하다고 말하면서 B를 부러워했다. 특집이든 레귤러든 프로그램이 론칭이 됐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냐며 B의 삶을 닮아가고 싶다고 했다. B는 D만 바라보았다. 레귤러 프로그램을 쉬지 않고 한 D에게 그동안 얼마를 벌었냐고 은근슬쩍 물으며 피디가 지랄맞아도 레귤러 프로그램을 하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아느냐고 했다. 그리고 D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C에게 괜찮은 피디를 알아볼 테니 새로운 프로그램 기획을 들어가자고 닦달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대화에는 결국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간절함이 담겨 있다. 나에게 현재 부족한 것, 풀리지 않는 숙제가 무엇인지, 내게 필요한 것을 생각하다가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그게 부러운 거다. C는 A의 인맥이 부러운 것이고, A는 B의 론칭 능력 또는 운이 부러운 상황, B는 D가 꾸준히 돈을 버는 게 부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D는 팀을 옮기고 싶은데 마땅한 팀이 없으니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C의 두뇌를 빌리고자 하는 것이다.


가끔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부럽다' '나도 너만큼만 됐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재테크, 연애, 결혼, 비전에 대한 것이다. 재테크는 결국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식을 안 하는 친구들이 없어서 서로가 어떤 종목을 샀고, 얼마나 수익을 냈는지를 서로 이야기하며 부럽다는 말을 연발한다. 그리고 최근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는 친구들이 꽤 있는데, 은행 도움이 대부분이더라도 큰 자산이 생긴 것에 대해 서로 부러워한다. 연애와 결혼은 상대적인 이야기로, 결혼을 하고 싶은데 괜찮은 남자가 없는 친구들은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 친구를 보며 부럽다고 하고, 결혼을 한 친구들은 연애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친구에게 지금이 호시절이라며 싱글을 부러워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이 습관인 것 같다. 내가 가진 떡보다 남이 가진 떡이 더 커 보이듯, 일단 친구가 무엇을 했다고 하면 '부럽다'라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했는지를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 그러나 부러움으로 가득한 감정은 순간의 감정일 뿐이다. 상대가 그런 결과물을 내는 동안 나는 뭘 했는지 답답해하면서도 결국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음에 한탄하고 타인의 상황을 부러워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자책 또는 반성을 하지만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금방 현실을 직시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A, B, C, D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를 부러워하고 열망하는 듯 말하지만, 누군가 넷이 인생을 바꿔서 살아볼래?라고 하면 아마 모두가 싫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입으로는 타인을 부러워하지만, 결국 현재의 삶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이제까지 내가 일궈온 삶인데 누군가의 삶을 잘 알지도 못한 채 떠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너무 버거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극한의 상황에 처해있지 않은 이상 자신의 삶을 쉽게 내려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 있다. 그렇기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저 부러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서 있는다고 감이 내 입으로 쏙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 시간에 티끌만큼이라도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이 내가 소원하는 것에 가까워지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우리는 생각보다 현실적인 사람들이기에,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현실은 현실임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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