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일 : 나 살쪘어?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근 몸무게는 늘지 않았는데 운동을 자주 못 해서인지,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서인지, 간혹 술을 마셔서인지, 야식을 몇 번 먹은 탓인지 몸이 부은 게 느껴졌다. (이렇게 쓰다 보니 살이 찐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어제부터 점심까지만 식사를 하고 저녁은 먹지 않기로 스스로와 다짐을 했다. 이미 잡힌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아침이나 점심을 최소화하고, 저녁을 조금만 먹는 걸로 스스로와 타협도 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내가 꼭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 살쪘어?'라고 묻는 것. 제일 먼저 내 질문을 받는 사람은 엄마다. 그러나 엄마는 신빙성이 가장 떨어진다. 웬만해서는 안 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느니, 밥은 절대 굶지 말라느니 걱정을 먼저 하는 사람이라서 이 질문이 크게 의미가 없다.
두 번째는 친구나 후배들에게 묻는다. 친구들은 비슷하다고, 전혀 찌지 않았다며 오히려 자신이 찐 것 같다는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 버린다. 요즘 바지가 너무 꽉 낀다, 움직임이 둔해졌다, 식욕이 폭발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보통은 여성의 생리 주기가 가장 만만한 이유이고, 그다음으로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다가, 최종적으로는 나잇살이라는 단어로 합리화 한다. 같은 패턴으로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달콤한 디저트는 필수이기에 우리의 뱃살은 꾸준히 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하자며 식단과 운동은 필수라고 파이팅을 외치지만, 다음 날 연락을 하면 다이어트는 남의 일이다.
결국 '나 살쪘어?'라는 질문에 진짜 답을 해줄 이는 남자들이다. 집에는 아빠와 남동생이 있고, 밖에는 함께 일하는 남자 스태프들, 그리고 남사친이나 썸남, 남자친구가 있다. 남자친구가 있으면 사실 멀리 가지 않고 바로 묻는다.
"나 요즘 살찐 거 같지 않아?"
남자친구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동공이 흔들리며 잠시 머뭇거린다. 그리고 내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다.
"아니! 전혀!"
"트집 잡으려고 물어보는 거 아니고 그냥 솔직하게 대답해 줘. 살쪘으면 다이어트 시작하게!"
"에이, 살찐 거 같았으면 내가 먼저 말했을걸. 잘 먹고,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해~ 알지?"
피곤한 일 만들기 싫다는 듯 멘트를 돌려 깎기 하는 그에게 추가 질문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진짜 대답은 집에서 찾을 수 있다. 나와 앙숙인 남동생에게는 어떤 질문을 해도 이상한 답이 돌아오기 때문에 바로 안방으로 직진! 이 질문에서 가장 정확하고 솔직한 답을 듣고 싶다면 아빠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진실은 안방에 있다.
"아빠, 나 살쪘어?"
"(한참을 바라보다가) 아니. 왜 찐 거 같아?"
"좀 부은 느낌이랄까? 어때?"
"찌진 않았어. 비슷한 거 같아. 그런데 본인이 느끼면 조심하는 게 좋지."
아주 미묘한 차이지만, 아빠는 나를 자극했다. '안쪘어' 와 '찌진 않았어, 비슷해'는 아주 미묘하게 다른 의미로 느껴진다. 저런 대답이라면 아주 조금이라도 찌긴 찐 거다. 나는 시무룩해져서 방으로 돌아와 다이어리를 펼쳤다.
'오늘부터 저녁 금식! 6시 이후로 금식! 군것질도 금지!'
어제는 이 약속을 잘 지켰는데 오늘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원래 월요일은 달달한 걸 먹어줘야 하는데 견딜 수 있을런지. 최대한 참고 또 참아본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아빠에게 다시 물어봐야지.
"아빠, 나 살 빠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