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일 : 옷 정리

옷 정리를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몽상가 J

계절이 바뀌면 옷 정리를 한다. 오늘은 겨울이 끝나가니 두꺼운 옷은 넣고 얇은 긴팔과 조금은 이르지만 반팔을 조금 내놓았다. 차곡차곡 접어 놓는 티셔츠 외에도 옷걸이에 걸려있는 모든 옷들까지 한 번에 싹! 간단히, 후딱 정리하자는 말과는 달리 아무리 빨라도 2시간은 걸리는 옷 정리는 거의 중노동에 가깝다. 그리고 매번 정리를 할 때마다 버릴 옷이 나온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오늘도 최소 40벌의 옷과 이별을 했다. 보푸라기가 너무 심한 옷이나 오래 입은 옷, 색이 바랜 옷 등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입지 못할 옷이었다.


이 집의 옷장에는 엄마, 언니, 나의 옷이 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모든 옷을 정리할 수는 없다. 내가 리드를 하며 하나하나 옷을 펼쳐서 버릴 옷과 계속 입을 옷을 심판대에 올린다. 엄마와 언니는 자신의 옷이 나오면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라 절대 버릴 수 없어."라고 말한다. 물론 나도 최애 옷의 경우 약간의 보푸라기가 났더라도 이번 시즌까지만 입겠다고 선언한다. 그런 식으로 자기 옷을 챙기다 보면 결국 버려야 할 옷을 버리지 못하고 다음 시즌까지 넘기게 된다. 오늘만 해도 서로의 옷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다가도 본인의 옷이 등판하면 절대 사수를 외치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왜 본인의 옷에만 관대해지는지 알 수 없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옷이라고 말하는 것 외에도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그 옷은 내 몸매에 최적화된 옷이야!"

"이 옷으로 말할 것 같으면 OO에게 선물을 받았고..."

"진짜 비싸게 주고 산 옷이란 말이야. 아직 더 입어야 해."

"이 옷 진짜 편하거든. 어디 가서 이런 옷 다시는 못 산다."


누가 보면 내가 옷을 빼앗아가는 나쁜 사람인 줄 알겠다며 목에 핏대를 거두라고 하지만 정작 내 옷이 등장하면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넣어둔다. 엄마가 확 낚아채며 이제는 버리라고 해도 나에게 이만한 옷은 없다고 다시 한번 낚아챈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 실랑이를 벌인 뒤 버릴 옷 산더미를 바라보면 꽤 뿌듯하면서도 대체 이 옷들은 왜 지난 시즌에 버리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어쨌든 이번 시즌에라도 버리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재활용 코너에 와장창 넣어두고 오면 또 한 번의 옷 정리가 끝난다.


아마 나는 이번 봄, 여름 시즌을 보내면서 또 여러 벌의 옷을 구매할 것이다. '이상하다. 입을 옷이 없는데 작년에는 어떻게 이 시기를 버틴 거야.'라는 말과 함께 '지난번에 옷 정리할 때 너무 많이 버렸나?'라는 말도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타당함을 부여하며 쇼핑몰을 뒤적이겠지. 그럼 조금은 여유로워진 옷장이 다시 꽉 차게 될 것이다.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와 언니에게도 일어날 일이기에 오늘 버려진 40여 벌의 옷만큼 다음 시즌에는 새로운 옷들로 꽉꽉 채워질 것이다.


그런데 여름 옷이 너무 없던데... 나 작년에 대체 뭘 입고 다닌 거지? 누가 나 몰래 버리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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