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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Feb 14. 2020

비밀 속에 있는 나

비밀이 많은 건 사실이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휴대폰 게임은 절대 할 수 없을 만큼 나는 '비밀스러운 나'로 살아가는 파이가 생각보다 크다. 그런 나의 비밀스러움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데 그중 모든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는 단 한 명뿐이다. 나의 모든 걸 이해해주는 친구.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에게 말하기 힘든 부분은 오직 그 친구에게만 털어놓는다.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말하면 안 돼."


이런 말을 꺼낼 필요도 없는 사이. 내가 한 말을 그 친구는 마음속 깊이 꼭꼭 숨겨놓는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발설할 수 있지 않냐고? 아니다. 물론 그만큼 내가 그 친구를 믿는 거다. 어쩌면 내가 힘들 때, 비밀 속 아픔을 끄집어 내야 할 때, 나보다 그 친구가 더 고통스럽고 답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참 이기적이지만 그걸 알면서도 난 또다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술 친구가 되어달라고 매달린다. 


'공적인 나'와 '개인적인 나'로 살아갈 때의 내 모습은 꽤나 현실적이고, 당당하며, 똑똑한 척한다. 남에게 지지 않으려 하고, 남이 나를 얕보는 걸 참지 못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면 물 것처럼 달려든다. 하지만 '비밀스러운 나'는 약하고, 부족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그걸 티 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나는 누구보다 에너지 소비가 과하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또는 누군가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깊은 암흑처럼 까맣게 물드는 순간이 정말 많다. 특히 내 '비밀 속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의 관계가 무너졌을 때, 나는 거의 침몰되어 간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일어서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갓 태어난 짐승처럼 자꾸만 넘어지고, 나를 일으켜줄 누군가를 찾기 바쁘다.


요즘 내가 그렇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하고 웃고 즐기면서도 가슴 한편이 움직이질 않는다. 오직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매사에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관계에 금이 갈 때마다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일어설 수 있는지. 과오를 반성하고, 지나온 시간들을 한참 동안 곱씹으면서, 왜 이렇게 나약한 인간인지 스스로를 책망할 뿐이다.


누군가는 얼굴이 많이 상했다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묻기도 하지만, 나는 그저 "괜찮아요, 잠을 설쳤나 봐요."라고 대답할 뿐이다. '저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비밀 속에 갇혀버린 나'는 절대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얼마나 많은 책임을 지게 하는지 잊지 말라고. 


내가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당신이 나를 돌아봐주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일어설 수 없다. 얼마나 더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상처받는 순간들이 늘어날수록 '비밀로 가득한 나'를 버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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