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들이 가장 많이 하는 업무 중 하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출연자와 인터뷰를 하는 일이다. 인터뷰를 하는 방식은 직접 출연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는 대면 인터뷰, 매주 돌아가는 토크쇼에서 주로 하는 방식인 전화 인터뷰, 서로가 바빠서 메일로 주고받는 지면 인터뷰 등이 있다.
4-5년 차가 됐을 무렵, 음악쇼를 전문으로 하던 채널에서 음악 토크쇼 (예를 들면,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프로그램)를 한 적이 있다. 그 채널의 특성상 작가 수가 3-4명을 넘기는 일은 큰 오디션을 제외하고는 없었고, 당시 네 명이서 꾸려가는 프로그램의 셋째를 맡은 나는 언니들의 배려로 대본도 쓰고, 피디님과 함께 자막도 쓰고, 막내 작가와 함께 자료도 서치 하는 다양한 업무를 맡았던 기억이 난다. 그 채널은 작가들 사이에서 환경이 좋지 않기로 유명했지만, 음악 토크쇼를 하는 게 꿈이었기에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말았다. 덕분에 막차가 끊긴 적도 허다하고, 오전에 자막을 써야 한다는 피디들의 열정 때문에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가 첫 차를 타고 출근했던 적도 많았다.
당시 메인 작가님께서 나를 좋게 봐주셨는지 동시에 타 프로그램의 기획 일까지 하게 됐는데, 4-5년 차 작가가 두 개의 프로그램을 한다는 건 체력적으로나 물리적인 시간으로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두 개의 프로그램에서 주어지는 숙제를 하기 위해 1초도 쉬지 않고 밤을 새워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일을 다 끝내지 못해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하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는 친한 후배에게 자료 서치를 부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살았는지 헛웃음이 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면 방송계에서 매장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나는 노래가 갖는 힘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멜로디에 의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지만 나는 주로 가사에 감정이 휩쓸리는 타입이다. 그리고 어떤 순간, 어떤 공간 속에서 들려왔던 노래는 그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 고백을 하기 위해 준비한 노래, 잘 자라고 불러주던 노래, 첫 키스를 할 때 들려오던 노래 등.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좋았던 추억보다는 슬픈 기억 속에 갇혀있는 노래일수록 더 오랫동안 간직하게 된다.
밤을 새우고,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잦았던 이 프로그램을 할 때쯤, 두 해나 지났지만 여전히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의 소소한 추억들,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즐겨먹는 음식, 소소한 취미나 오래된 습관 등 여전히 내 삶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헤어지던 날, 그 사람과 헤어짐을 이야기하고, 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꽉 쥐었던 손끝의 떨림과 함께 정확히 귀에 꽂히던 노랫말. 그 사람과 내가 있던 그 자리에서 무거운 침묵을 비껴갔던 그 노래는 몇 해가 지나도 내 귓가를 맴돌았다. 엄청난 히트곡도 아닌데 자꾸만 나를 따라다니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한동안은 참 많이도 울었다. 신기한 건 트라우마처럼 이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마치 그 날로 돌아간 사람처럼.
그런데 짓궂은 운명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 눈물 버튼과 같았던 노래를 부른 가수가 출연을 확정 지었던 것. 그가 출연을 확정 짓는 것 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괜히 울컥할 것 같아서 최대한 마주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디 그를 담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그 가수의 담당은 내가 되었고,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었던 전화 인터뷰도 내가 해야 했고, 정말 이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던 그 노래에 관련된 질문 역시 내가 해야 했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다. 하필이면 그날, 그 장소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온 잘못이지. 그리고 그날, 그 장소에서, 그 노래를 들으며 헤어짐을 선택한 우리의 잘못이고.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하면서도 나는 안절부절하며 도망치고 싶었다. 음악쇼를 하게 되면 출연자의 노래를 지겨울 때까지 들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 회차를 준비하는 시간이 지옥 같았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듣기만 해도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는 그 노래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 하다니 이건 그냥 '너의 아픔을 다 헤집어 놓겠다'라고 공격하는 것과 다름없는 거니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기에 모든 걸 체념하고 나는 전화를 걸었다. 그는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이런저런 내 질문에 담백한 답변을 이어갔다. 어쩌면 내가 괜한 겁을 먹었다고 느낄 정도로 그의 목소리에서는 눈곱만큼의 애절함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식이라면 괜찮겠다 싶었다. 아주 차분하게 잘 마무리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의 그 노래에 대한 질문을 하는 순간! 오히려 터져버린 건 내 쪽이었다. 내 추억 속에 깊이 간직된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그 어떤 감정도, 의미도, 애정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결국 울컥하고 말았다.
"저한테는 사연이 있는 노래거든요. 제가 헤어지던 날, 그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저 아직도 그 노래만 들으면 울어요. 거리에서도, 술집에서도, 카페에서도 왜 그렇게 그 노래가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들으면 그냥 울어요.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생각나요, 그날이. 그날의 감정이."
속사포처럼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고 나니, 휴대폰을 들고 있던 내 손과 당황한 듯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숨소리만이 우리가 아직 통화 중임을 알게 했다. 창피함보다도 혹여나 무례하다고 여겨 화를 내지는 않을까 입술을 꽉 물고 있을 때쯤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고마워요. 어쨌든 제 노래를 기억해 주시는 거잖아요. 감사합니다."
이후의 인터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당시에는 통화 내용을 녹음해서 프리뷰 작업을 했겠지만 민망하면서도 고맙다는 말로 반응해 준 그가 괜히 고마웠다. 그리고 며칠 뒤 녹화를 위해 만난 그에게 나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대본 리딩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방송국에서 일을 하면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내 추억 속에 함께 존재했던 인물들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내 추억 속에 살아있는 그들을 마주할 때면 주책바가지처럼 설레거나, 분노하거나, 내적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럴 때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를 다시 만나 그 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목소리 떨림 하나 없이 인터뷰를 진행할 자신이 있다.
"그룹으로 활동하시다가 솔로로 발표한 첫 노래였잖아요. 오롯이 혼자 무대에 섰을 때 어떠셨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연차가 쌓여 감정 컨트롤하는 능력이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대답이 담담하다 못해 건조해 말라비틀어진대도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다음 질문을 이어나갈 자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