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 모소 대나무
광고를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구 경기를 보다 보면 테크니컬 타임, 세트가 끝날 때마다 중간중간 광고를 봐야 한다. 그런데 그 광고라는 게 다른 방송에 비해 다양하지 않아서 한 시즌을 지켜보는 내내 특정 광고를 외우다시피 하게 된다. 모 아파트 광고, 모 음식 광고 등 최근 시즌에 봤던 광고들은 지금 생각해도 툭 치면 나올 것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솔직히 광고라는 게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등장한 모 은행 광고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아직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 기업들을 위해'라는 슬로건과 함께 창업 육성 프로그램의 사업설명회 모습을 모티브로 제작된 광고였다. 그 광고의 내용은 이러하다. 사업설명회 초반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스타트업 대표가 떨리는 목소리로 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은행 직원의 응원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치게 된다. 실제 직원과 스타트업 대표들이 출연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진정성이 담긴 모습도 인상 깊었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모소 대나무'에 대한 이야기였다.
모소 대나무란 중국 극동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씨앗이 뿌려진 후 4년 동안 고작 3cm밖에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을 집어삼킨 것처럼 잠잠히 있다가 5년이 되는 해부터는 매일 30cm씩 성장하며, 6주 차가 되면 15m 이상 자라서 울창한 대나무 숲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4년 동안 미동이 없던 나무가 6주 사이에 엄청난 성장을 통해 울창한 숲을 만든다는 것이 정말 놀랍지만, 사실 모소 대나무는 지난 4년간 땅속에서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려 6주의 시간 동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광고에서는 스타트업 기업을 모소 대나무에 빗대어 기업의 향후 가능성을 높이 산다는 취지의 울림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모소 대나무를 키우는 사람은 4년간 잠잠했던 나무가 6개월 만에 급속도로 자라는 모습을 봐도 놀라지 않는다며, 그 이유는 모소 대나무가 5년 뒤에는 푸른 숲을 만들어줄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광고의 주인인 모 은행 역시 혁신 기업의 현재 모습보다는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고 적극 지원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배구 경기를 보는 내내 이 광고를 여러 차례 접하면서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었지만, 볼 때마다 뭉클함과 묘한 울림이 느껴졌다.
2021년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 한층 성장해야 하는 신호를 계속해서 받아왔다. 하지만 모험을 두려워하는 나는 익숙한 발판을 딛고 있는 지금이 좋았다. 변하고 싶지 않았다. 한 계단을 오르면 낯선 발판에 익숙해지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지가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경험이 축적되기까지 스스로를 얼마나 채찍질하게 될지, 시작도 하기 전에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부딪히기로 결심했으면 잘한 거고, 부딪히는 것조차 포기했다면 넌 이미 실패한 거야. 나도 너를 믿는데, 너는 왜 자신을 믿지 못해. 되는 안되든 일단 해봐. 넌 충분히 해내고도 남을 사람이야. 너를 못 믿겠으면 나를 믿고라도 일단 해 봐. 판을 벌리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도망가려고 해? 빈말이 아니고, 진짜로 넌 할 수 있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확신에 찬 목소리에 울컥하는 마음을 다잡고 괜한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감을 북돋아준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접한 이 광고 속에서 나는 답을 찾았다. 그동안 나는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내실을 다진 것이다. 땅속에서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으니, 이제는 땅 위로 솟아오를 일만 남았다. 모소 대나무처럼 정말 울창한 숲을 만들어낸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언젠가는 푸르른 숲을 만들어내리라는 자신감을 갖고 올 한 해를 시작해보려 한다.
올해가 끝날 때쯤 웃으면서 이 광고를 기억할 수 있길 바란다. 물론 그만큼 성장하는 것은 내 몫이기에 부지런히 뛰고 또 뛸 것이다. 요행을 바라기보다 한 걸음씩 단단하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