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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Nov 02. 2019

잎은 꽃을 못보고 꽃은 잎을 못보고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11.2.토. 상사화 storytelling)

대개의 풀꽃은

잎과 꽃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무의 경우

꽃이 먼저 피고 잎사귀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상사화는 여러해살이풀이고

봄에 수선화같이 길고 넓은 잎을 틔우며

한참을 생육하다가

여름이 오기전에 그 풍성했던 잎사귀는 시들어 말라죽고

그 주검 토대 위에 기다란 꽃대가 올라와 꽃송이를 피웁니다.


참으로 묘한 꽃이지요.

더욱이

대개의 낮 꽃은 밤에는 꽃잎을 닫는데

이 상사화는 밤에도 피어있습니다.


낮에는 청초함을

밤에는 고매함을 간직하고 있는 꽃이지요.


상사화

봄에 수선화같이 길고 넓은 잎을 틔우며

한참을 생육하다가

여름이 오기전 그 풍성했던 잎사귀는 시들어 말라죽고

그 주검 토대 위에 기다란 꽃대가 올라와 꽃송이를 피움


계곡 물가 음지에 

기다란 꽃대가 올라 왔습니다.


30cm가 넘는 꽃대

꽃 몽우리를 다섯개 품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잎사귀를 찾을 수가 없지요.


수선화 잎같이 길고 넓은 잎은

여름이 오기전

풍성하게 자라

알뿌리에 영양을 축적하며 후일을 도모하고

미련없이 시들어 죽었던 것입니다.


몇일후

어린 아이 손바닥 크기의

고운 꽃이 피어 났지요.


꽃 빗깔도 청초하고

암수술도 생기 있습니다.

'안녕들 하세요!'라며


저 아래

지하 세계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듯


'저는 여러분들이 말하는

상사화입니다.

먼저 다녀갔던 잎사귀의 희생을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또 몇일후

한송이가 더 피어나

고고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한쪽으로만 몰아 피어나지 않고

균형감있게 피어나는군요.

낭창낭창한 꽃대가

작은 바람에도 흔들흔들


밤에 찾아가 보니

꽃잎을 닫지 않고

낮에 처럼 활짝 벌리고 있어

놀라웠습니다.


대개의 낮 꽃은 밤이 되면

꽃을 닫지요.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세번째 꽃 몽우리가 부풀어 올라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아침에 가 보니

왼쪽 세번째 꽃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욱 균형감있는

꽃 세송이

참으로

매력적이군요.


한동안 잊고 있다

장맛비가 한창이던 날

찾아가 보니

그 청초함과 생기는 어디 가고

빗물에 젖어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꽃 몽우리 다섯개가

성공적으로 피어났지만

꽃의 의지만으로는 버거운

자연의 의지에 힘없어 하네요.


'꽃에게 비란 고난이며 형벌'


그렇게

늦 장마는 계속되고

상사화의 처연함은

저 모습으로 한동안 더 있다가

이내 꽃들이 떨어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얄궂은 운명

꽃을 피울 에너지를 불어 넣어준

수고했던 잎사귀들을 보지도 못하고

홀로 솟아나

감격과 환희는 잠깐

짧은 한살이를 마감하네요.



말하지 못한 잎사귀의 변(辨)


지난 봄부터 초여름까지

뿌리의 지극한 정성으로

연초록의 잎을 틔우며

미래을 위한 생육을 시작했습니다.


알뿌리의 튼실함을 위해 잎 더 키우는 것도 자제하며

안으로 안으로 내실을 기했지요.


여름이 시작되면서

나의 잎들은 제 역할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구차히 더 존재하는 것은

어렵사리 축적해온 영양분을 소모하게 되리라 생각되었습니다.


이제

꽃의 미래를 위해서는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하니까요.


내게 남아 있는 마지막 양분까지

알뿌리로 내려보내고

저는 사라질 것입니다.


나의 모습은

모든 양분이 빠져나가 비틀어지고 말라가지요.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꿈을 꾸지요.

'우리의 미래인 꽃의 화려한 탄생을'


꽃의 미래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집중

나의 모습은

모든 양분이 빠져나가 비틀어지고 말라가지요

내게 남아 있는 마지막 양분까지

알뿌리로 내려보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꿈을 꾸지요

'우리의 미래인 꽃의 화려한 탄생을'



'이 새벽의 종달새' 블로그  http://blog.daum.net/hwangsh61

BAND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http://band.us/#!/band/6160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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