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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 Oct 11. 2022

20-21일 차 : 범섬이 사라졌다

서귀포에도 눈이,경이,새벽별,일상-엄마,먹고 살기

20일 차


서귀포에도 눈이


여기는 눈이 잘 오지 않고 쌓이는 일은 정말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눈이 와서 아주 조금이지만 눈이 쌓였다. 서울에서 보던 것처럼 함박눈이 펑펑 온 것이 아니라 가루 같은 눈이 알알이 내렸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굴러다니는 게 보여서 신기했다.

눈을 볼 때마다 항상 조금 설렌다. 어릴 때 살던 지역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아서 성탄절이나 새해, 설, 내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눈이 오면 엄청난 선물처럼 여겨졌다. 비록 내 생일에 눈이 온 적은 없지만, 겨울에 한두 번 눈이 와서 쌓이기라도 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밖으로 나와 옥외 주차장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발자국을 남기고 장갑을 벗어 맨손으로 차가운 눈을 쥐어보곤 했다. 어린 내 눈에 눈 쌓인 동네는 마치 축제날 같았다. 서울에 오고서는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했던 눈을 매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눈이 오면 설렌다. 눈이 쌓이다 못해 얼어붙거나 녹아내려 진창이 된 길을 걷는 일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면서도 설렘이 먼저였다. 눈더미에 반사된 빛무리에 백야처럼 밝아진 밤에 뛰쳐나가 눈을 맞고 사진을 찍었던 때가 떠오른다. 아직은 눈이 반갑고 좋기만 한 아이 같은 내 모습이 예쁜 추억으로 남아있다.


눈 오는 날이어서 그런지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춥긴 하다. 서귀포는 우리나라에서 겨울이 가장 먼저 떠나가는 곳이라 이제 봄이 오겠구나 하고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한 주 내내 겨울이 창밖을 두드린다. 그렇다면 담요로 몸을 싸매고 방에 틀어박혀 귤을 까먹으며 창밖을 봐주는 게 도리 아닐까?


내일은 서울로 간다. 다녀오면 정말로 봄이 오겠지? 눈처럼 녹아 사라질 시간들을 어떻게든 붙들고 싶어서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보았다.



범섬이 사라졌다


사실 창밖을 보며 멍하니 앉아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범섬이 일출 이후로 점점 사라졌기 때문이다. 해가 뜨자 갑자기 다시 눈이 내리더니 하늘과 바다가 뿌연 안개 너머로 사라졌고, 범섬 역시 그림자처럼 희미해지더니 이내 안갯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낮이 되자 여전히 흐리긴 했지만 범섬이 다시 선명해졌다. 사라진 범섬은 떠오르는 해와 구름이 만들어낸 마술적인 쇼였을까? 범섬이 사라지자 솔직히 좀 무서웠다. 섬뜩함도 있었다. 내일 비행은 문제없겠지? 그런 현실적인 고민도 되었다.


마른 하늘에 눈이 내리고 안개가 끼고 다시 걷히고 하는 그 모든 하늘의 변화가 기이하고 아름답다. 참 신기하게도 눈이 오면 오히려 세상이 맑아져 간다. 더 흐려지지 않고 맑아지는데 눈발은 거세어질 때면 정말 홀린 것 같다. 희미했던 섬의 윤곽이 점점 뚜렷해지는 걸 보면서 짐을 쌌다.



경이

저녁이 되니 완전히 날이 풀리고 하늘이 푸르러졌다. 잠깐 나갔다가 구름이 너무 그림 같아서 잠시 걸었다. 꼭 유화를 보는 듯했는데 유화 특유의 질감을 살려 저 하늘 같은 풍경을 표현해낸 화가들이 대단한 건지, 다양한 재질로 드러나는 자연의 변화무쌍함이 대단한 건지 헷갈린다.


날이 추웠지만 여전히 나는 홀린 기분이라 얇은 옷자락을 여미며 걷고 또 걸었다. 바닷가를 걸을 때면 세상이 온통 경이로운 것들로 가득하다.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일출보다 일몰 보기가 더 어려운 동네이고 내 생활 패턴도 그래서 간만에 붉어진 하늘을 보니 어딘가 생경했다. 도시에서는 일출이 잘 보이지 않아서 일몰에 감격하곤 했는데 여기서는 매일 붉은 점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일몰은 잘 보지 못했다. 해가 넘어가긴 해도 주황빛으로 하늘이 물들기도 전에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밤이 오는 생경한 방식이 신기하다.



뜨는 해나 지는 해나 다 같은 해이고 사실 해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기도 한데 우리가 일출과 일몰에 의미를 다르게 부여하는 건 왜일까?

언제부터 나는 의미 부여에 집착하고 호기심을 갖게 되었을까?

무엇이든 의미를 붙이고 나만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 그런 자기중심성이 오만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가끔 두렵다.




21일 차


새벽별


망한 별 사진 대회가 있다면 나가도 될 것 같은 새벽별 사진을 찍었다. 손이 흔들려서 밝은 별 하나 빼고는 반짝이는 별'들'은 찍히지도 않았다. 어제 방 옮긴다고 바쁘게 움직이고 짐도 섞이고 해서 나올 때 신분증을 놓고 나올 뻔 했다. 별 보며 신나 있었는데 그대로 잊고 버스를 탔다간 정말로 큰일 날 뻔 했다.


오늘 하루는 동트기 전에 여기서 중단되고, 이곳에 돌아오면 다시 시작된다.



일상-엄마


서울이 내 집이고 돌아갈 곳인데 고작 3주 머물렀던 이 섬이 내 집이 되었고 일상의 공간이 된 것 같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가장 먼저 든 느낀 것은 다시 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렇지만 서울의 집 역시 내가 돌아갈 또 하나의 집이라는 걸 잊지는 않았다. 엄마의 곁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공항까지 나와 함께 이동했다. 가까운 길도 아닌데 나를 배웅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공항까지 와주었다. 엄마는 아빠가 일하러 갈 때도 공항까지 배웅하러 따라간 적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뭉클했다. 아마 엄마는 아빠를 배웅하러 가고 싶어도 어렸던 우리 때문에, 집안일 때문에 머물렀을 거다. 그때도 지금도 엄마는 무엇보다도 딸을 우선시했다. 그 마음이 애틋하게 와닿았다. 역시 엄마구나, 세간에서 말하는 그런 희생적이고 말도 안 되는 모성이 아니라 그냥 딸을 사랑하는 엄마.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

그런 엄마의 팔짱을 끼고 싶어서 한참 꼼지락 대다가 결국 팔짱을 꼈는데 손도 잡고 싶었다.


괜찮다는데도 엄마가 챙겨준 참치캔과 김을 보면 짐을 풀 때 분명 엄마 생각이 나겠지. 나만의 집에서 엄마와 함께하는 집을 되새기겠지.



먹고 살기

짐이 많지 않아서 택시 대신 리무진을 탔는데 생각보다 돌아가는 노선인지 한참 오래 걸렸다. 좀 졸다가 눈을 떠보니 창밖으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온갖 화려한 호텔과 리조트들이 모여있는 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 구간을 지나 야생화와 푸른 나무들이 밭들 사이로 우후죽순 자라난 흙길로 들어서자 왜인지 더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내가 머물고 싶었던 이 섬의 진면목은 가꾸려고 애쓰지 않은 야생성 사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있었던 모양이다. 잘 꾸며진 이국적인 풍경보다도 야생화들이 제각각 뿌리내린 곳에서 과할 정도로 풍성하게 자라난, 갈증이 느껴질 정도로 푸르른 초록빛의 들에 더 마음이 갔다.


외진 곳에 정류장이 있어 도로변에 덩그러니 짐과 함께 내려졌지만 가는 길에 있는 빵집에 들를 생각에 설렜다. 소위 '찐주민 모먼트' 같은 걸 느꼈다. 여전히 이방인인 나의 착각이긴 하지만 가는 길에 자주 가던 빵집에 들러 빵을 사는 모습이 꼭 여행을 마무리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의 모습 같지 않은지?

먹는 게 일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자부한다.


마스크를 살짝 내려보니 옅게 짠내가 났다. 햇빛부터가 다르고 막히거나 고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도 다르다. 마침내 범섬과 바다가 보이자 웃음이 나왔다. 가릴 것이 없어 커다랗게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해가 나를 반기는 것 같다. 이제 두 달 동안은 여기서 쭉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시원섭섭한데 솔직히 좋다.


먹고 자는 게 할 일의 전부인 여유로운 일상으로 마침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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