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뭐가 좋아? 그냥 휴양지 아니야?"
어떤 여행이든 여행자의 취향에 따라 느긋하게 휴양을 즐길 수도 있고, 부지런히 관광을 다닐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탐험을 할 수도 있다. 내가 경험한 발리는 그 모든 걸 다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곳이다. 여유롭고 평화롭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정글 같은 우붓의 분위기를 제일 좋아하지만, 발리는 섬나라인 만큼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공항에서 가까운 꾸따를 기준으로 가장 먼바다부터 살펴보자.
멘장안은 깨끗한 바다 덕분에 세계 3대 스노클링 명소로 유명하다.
꾸따에서 차를 타고 편도로 4시간 이상 가야 한다. 보통 일일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데, 나는 발리에서 만난 '피피'의 친구가 멘장안까지 차로 태워다 줬다. 물론 비용을 지불했다. 피피의 친구라고 해서 당연히 젊은이일 줄 알았는데 60살은 되어 보이는 지긋한 어르신이 나를 데리러 와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이동하는 길에 어르신은 운전을 오래 해서 무릎에 통증이 있다며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 먹기도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챙겨간 동전파스를 붙여주기도 했다.
경찰의 검문을 통과해야 할 때는 어르신도 긴장했는지 "혹시 네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내 조카라고 해."라고 말했다. 택시가 아닌 개인차로 여행자를 태웠기 때문에 벌금을 내라고 할 수도 있다면서. 속으로는 '내가 조카라고 하면 경찰이 믿을까? 발리 말을 못 하는데 영어로 답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알겠다고 답하고 최대한 시크한 표정으로 발리 사람인 척(?)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다행히 한 달 가까이 발리 햇볕에 익은 내 모습이 꽤나 발리 사람 같았는지 무탈하게 통과했다. 무심한 척 나름 혼신의 연기를 펼친 우리 둘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4시간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험난한 산길을 견디며 생고생을 하고 나니 정이 들었다. 어르신은 멘장안의 숙소에 나를 내려주며 숙소 주인에게 "이 아이를 잘 부탁한다."라며 진심 담긴 목소리로 당부하고 다시 꾸따로 돌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멘장안 바다. 사람도 없고 가게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정말 바다, 그 자체인 곳.
2016년, 벌써 8년 전이다. 퇴사 후 혼자 간 발리여행이었다. 발리 시내에 있으면서도 문득문득 쓸쓸했는데 꾸따에서 5시간 떨어진 마을에 오니 우주에 나 혼자인 듯 기분이 묘했다.
다행히 멘장안 숙소 주인도 참 따뜻한 사람이라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도 외롭지 않게 지냈다. 그는 스쿠버다이버였고 그를 통해 편하게 스쿠버다이빙 투어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멘장안까지 데려다준 아저씨도, 멘장안 숙소 주인도, 참 고맙고 감사하다. 복 중에 사람 복이 제일 인 것 같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멘장안, 다음 발리 여행 때는 남편과 함께 다시 가보고 싶다.
(구글에서 Bias Tugel Beach라고 검색)
2018년 9월, 남편과 신혼여행으로 함께 갔던 발리. 사람 없는 고요한 해변을 찾아서 화이트샌드비치에 갔다.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바로 그 숙소에서 머물렀던 곳.(4화. 1박 5만 원, 발리에서 만난 천국. 참고)
새벽이 밝자마자 숙소에서 뛰쳐나와 바다로 달려갔다. 바다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발리의 또 다른 천국이었다..... 사람도 없고 바다도 깨끗하고, 바닷물 색은 환상적.
고운 모래사장이라 뛰어놀기에도 좋았다. 파도가 꽤 세서 신나게 바다수영을 했다. 6년 전에는 주변에 간이슈퍼 같은 시설만 있었는데 최근 구글 리뷰를 보니 식당이 더 생긴 듯하다.
항구 앞 식당에서 먹었던 오징어 구이와 빈땅 맥주도,
마을 사람들 놀이판에 슬쩍 끼어 놀았던 시간도, 모두 추억이다.
우리끼리만 여유롭게 바다를 즐기고 싶다면 시내에서 2~3시간, 멀게는 4~5시간 떨어진 바다로 가면 된다. 전세 낸 듯 바다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여행자와 현지인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생동감 있는 바다를 찾는다면, 우리에게는 꾸따와 짱구가 있다.
2015년 처음 꾸따 바다를 만났을 때, 그때는 꾸따도 평화로운 바다였다.
2016년 혼자 다시 발리에 갔을 때도 꾸따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꾸따의 파도는 초보자가 서핑하기에 가장 알맞다고 한다. 나도 꾸따에서 처음 서핑을 배웠다.
하지만 2018년 남편과 다시 꾸따를 찾았을 때, 우리는 꾸따의 난잡함에 놀라 도망치듯 꾸따를 빠져나왔다.
꾸따 시내를 걷는데 마약(?) 같은 잎담배를 들이대기도 하고, 정신없는 틈을 타 남편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흠치려고 하기도 했다. 꾸따의 바다도 꾸따의 거리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발리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우리는 훌륭한 서퍼를 만나 서핑을 즐겼고, 서핑 후 꾸따 비치에서 먹은 나시짬뿌르와 생코코넛은 잊지 못한다. 하지만 2024년 다시 발리에 갔을 때 우리는 꾸따에 가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우붓에서 지내다가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우리는 짱구(Canggu)로 간다.
짱구는 비교적 늦게 개발된 곳이고, 지금도 여전히 개발되고 있어서 공사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여행자를 위한 다양한 레스토랑, 브런치 카페, 쇼핑샵, 리조트 등이 생겨나며 유명해졌고, 우붓이나 꾸따에 비해 더 젊고 세련된 느낌이다. 짱구는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있는 지역인 만큼 비치클럽으로 유명하다. 바다 앞 비치클럽에서 수영도 하고 일몰도 보고 식사도 하며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다. 짱구의 파도가 꾸따보다 높아서 중급이상의 서퍼들이 찾는다고 한다.
6년만에 다시 찾은 짱구의 일몰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짱구 해변을 따라 쭉 올라가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타나롯 사원(Tanah Lot)도 가보면 좋을 듯하다. 만조 때 사원 주변이 물에 잠기는 해상 사원인데 이곳에서 보는 일몰도 멋지다고 한다. 저장만 해두고 가보진 못했다.
네 번이나 발리에 갔지만 사누르, 빠당빠당, 누사페니다, 길리섬 등 아직 못 가본 발리의 바다가 많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기다리며 발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도 발리랑 비슷한 섬이 있어."
"아, Jeju?"
"오, 아는구나. 맞아. 제주도에도 바다도 있고 산도 있거든."
"누사페니다!"
바다랑 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제주도를 말했더니 그녀의 입에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누사페니다'가 튀어나왔다.
"다음에는 누사페니다 가봐.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정말 아름다워."
"오케이, 누사페니다!"
그렇게 발리에 또다시 가야 할 핑계를 만들어두고 왔다.
발리에서는 바다뿐만 아니라 계곡과 폭포도 즐길 수 있다.
우붓 산기슭에서 즐기는 래프팅
구명조끼도 헬맷도 보트도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동강 래프팅보다 5배는 더 재미있었다. 날 것의 익스트림....
발리 폭포 탐험
바다도 계곡도 폭포도 별로라면? 수영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