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직업의식이 어째서 중요한가를 되새기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노베스타 스니커즈
평소에 안 신던 굽 있는 구두를 신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두 시간 거리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겨울 공기가 스산했다. 구두 속 앞꿈치가 저리고 기분도 저렸다. 걸어도 걸어도 집이 안 나올 것 같은 암울한 기분에 문을 활짝 열어놓은 운동화 가게를 마주쳤다. 불현듯 뭐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 한복판에 전시되어있는 빨강 운동화는 신는 순간 사바세계의 모든 근심걱정을 해소시켜 줄 것처럼 산뜻해 보였다. 사이즈를 맞춰 신어보고 7만 9천 원을 지불하고 점원에게 "신고 갈게요"라고 말했다. 그래 여기서부터 집까지라도 편하게 가자.
편하게 가자는 마음과는 다르게 이상하게도 발은 점점 더 불편해져 갔다. 분명 운동화를 신었는데 구두를 신은 것보다 더 발이 아팠다. 오래 걸어 발이 피로해서 그런가. 양말이 아니라 스타킹을 신어서 그런가. 불편한 신발을 신었을 때의 참담함을 표현하는 단어가 진정 세상에는 없는 것인가! 그 단어를 백번씩 외치고 싶은 상태로 집에 도착한 나는 말 그대로 기진맥진. 구두고 운동화고 입고 있던 옷이고 전부 훌훌 벗어서 던져놓고 이불속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새 아침이 밝았고 빨강 운동화는 여전히 산뜻한 모습으로 현관에 던져져 있었다. 아침의 희망찬 분위기 때문인지 왠지 어제의 내가 선량한 운동화를 오해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톰한 양말을 잘 챙겨 신고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집을 나섰다. 불과 열 걸음쯤 걸었을 때 어제의 내가 오해는 개뿔 운동화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운동화로 말할 것 같으면 어디가 아픈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앞꿈치 뒤꿈치 옆 꿈치(?) 발바닥 발등 모든 부분이 불편한 마법의 운동화다. 똑바로 신었는데도 왼발과 오른발을 바꿔 신은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진다. 천은 얇고 뻣뻣한데 고무 밑창은 무겁고 딱딱하다. 그 와중에 밑창 안쪽은 발바닥 모양으로 굴곡이 져서 한 발 디딜 때마다 지압판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버켄스탁은 발바닥에 굴곡이 있어도 밑창이 코르크라 가볍게 들리고, 샌들의 특성상 발의 여유공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불편한 느낌이 안 든다. 그에 반해 이 운동화는 앞뒤가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얇은 천 쪼가리로 무거운 지압판을 들어 올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이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고 내가 과연 양말을 신긴 신은 건가! 회사까지 얼마나 남았나! 지금이라도 문구사에 들어가서 삼선을 사 신어야 하나!
그 후로 두세 번쯤 더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하나도 낡지 않은 운동화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누가 주워다 신을까 봐 종량제 봉투에 꽁꽁 싸매 버렸다. 어떤 운동화를 신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235 사이즈의 표준화된 발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버리기 전에 두세 번쯤 더 시도를 해본 이유는 단지 이 운동화의 겉모습이 너무나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멀쩡하게 생겼는데 이야기해보니 좀 이상하더라 하다가도 다시 보면 또 진짜 멀쩡하게 생겨서 한번 더 말을 붙여보게 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결국 아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멍충이구나를 깨닫고 피하고 마는, 이 운동화가 딱 그런 꼴이었다.
무슨무슨 스포츠 브랜드의 러닝화가 아닐 지라도 굳이 분류하자면 이것도 운동화일 텐데 대체 이걸 어떤 놈이 만들었나. 이 운동화를 만든 자의 직업의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들고 나서 신어는 본 것일까. 내가 만든 운동화라고 가족 및 지인에게 선물도 했을까. 예쁜 모습에 끌려 산 나 같은 어리석은 자들이 '노베스타 착화감'이라는 검색어로 무의미한 검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그 사람 혹은 그 사람들의 미흡한 직업의식이 한 사람의 출근길을 진퇴양난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애초에 '신발'의 본질, 신발 제조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운동화를 질질 끌다시피 하고 회사에 거의 다 와갈 때쯤 나는 기도했다. 이 신발 모형을 한 무언가를 만든 자가 이 것을 신고 성지순례길에 오르기를, 그리하여 걷고 또 걷다가 "주님, 제가 직업의식이 부족하여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 나아가게 하였나이다"하고 가슴을 치며 고백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