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IP비즈니스로 성장하다, #2. #2. IP가 중요한 이유
IP가 중요해진 이유는 미디어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에 있다.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액체 미디어(Liquid Media)'라고 명명할 수 있다면, IP는 이 유동적인 환경 속에서 새로운 이용자 집단, 즉 '팬덤'을 결집시키는 핵심 단위로 부상했다. 과거에도 원소스 멀티유즈(OSMU)나 라이선싱 활동은 존재했지만, 지금 IP가 특별히 더 중요해진 이유는 미디어 간의 상호 융합과 연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연계의 시대'인 것이다.
'액체 미디어'라는 용어는 미디어의 '소프트웨어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과거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등으로 단단하게 구분되던 미디어 간의 경계가 약화되고, 융합되며, 마침내 녹아내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액체는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속성이 있다. 고체가 저마다 정해진 형태를 갖는 것과 대조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활용하는 OTT와 같은 미디어는 본질적으로 소프트웨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개발자가 코드 몇 줄을 수정하는 것만으로도 미디어의 기능과 형태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전통 미디어는 그 본질이 단단하여 변화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소프트웨어 기반의 현대 미디어는 그 성격이 언제든 바뀔 수 있을 정도로 유동적이다. 이처럼 그릇을 바꾸면 모양이 바뀌는 액체처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미디어를 '액체 미디어'라 칭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미디어가 디지털 기술과 소프트웨어에 의해 구동되는 지금은 가히 '액체 미디어의 시대'라 할 수 있다.
IP, 액체 미디어 시대 팬덤의 구심점
액체 미디어는 과거의 '고체 미디어', 즉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와는 다른 사업적 속성을 지닌다. 과거 레거시 미디어 시대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방송이라는 레거시 미디어의 사업 모델은 기본적으로 시청료 혹은 광고 수익에 기반했다. 특히 광고 모델의 핵심에는 '수용자 상품론'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이는 시청자가 방송을 바라보는 주목과 시간을 상품으로 간주하여 광고주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수용자의 규모와 관여도가 상품이 되고, 그 대가로 광고비를 받는 것이 광고 기반 미디어 비즈니스의 핵심이었다.
이 모델이 유효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습관처럼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시청률'이라는 지표는 이렇게 모인 사람들의 규모를 측정하고 판매하기 위한 기반이었다. 이처럼 특정 시간에 극장을 찾는 '관객',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독자' 등, 각각의 고체 미디어 앞에는 비교적 고정된 이용자 집단이 존재했다. 이들, 즉 '미디어의 팬덤' 규모가 비즈니스의 원천이 되던 시대가 바로 고체 미디어 시대였다.
그러나 액체 미디어 시대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의 미디어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여러 미디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행태가 보편화된다. 모든 미디어가 디지털 스크린 안으로 녹아들어와 태블릿이나 컴퓨터에서 소비되면서, 미디어 간 전환이 매우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 이상 특정 '미디어의 팬덤'으로 움직이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중심으로 모이고 주목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액체화된 미디어는 과거와 같은 구심점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현대 사회의 특성과 유사하다. 과거의 사회가 가족, 국가, 종교 등 단단한 가치 체계에 의해 지탱되었다면, 현대는 그러한 전통적 가치들이 녹아내려 개인이 정체성과 관계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 시대라는 것이다. 미디어 환경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책'이 텍스트, 종이 인쇄, 개별 구매 단위라는 요소들의 단단한 '묶음'이었다면, '방송'은 영상, 광고 기반, 가족 시청 단위라는 요소들의 '묶음'이었다. 액체 미디어 시대란 이러한 묶음들이 풀려나 끊임없이 '재묶음화'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유동성 속에서 사업자의 고민은 깊어진다. 극장의 관객 수, TV의 시청률, 출판의 판매량과 같은 전통적인 지표는 여전히 유의미하지만, 여러 플랫폼을 자유롭게 오가는 이용자들의 행태를 온전히 포착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때 비즈니스를 위한 효과적인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IP다. 이용자를 특정 미디어 단위로 타겟팅하는 전략보다, 그들이 열광하는 'IP'를 단위로 타겟팅하는 전략이 훨씬 더 효과적인 시대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특정 미디어 앞이 아닌, 특정 'IP' 앞에 모인다. 동일한 스크린 안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넘나들며 소비하는 유동적인 팬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단위가 바로 IP이기에, 그 가치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IP는 팬덤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작품이 있을 때, 이용자가 드라마로 보는지 웹툰으로 보는지를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복잡하지만, '유미의 세포들을 좋아하는 팬덤'이 일정 규모 이상 존재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사업자는 이 팬덤을 직접 타겟팅하여 다양한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방송 영상 산업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EBS 캐릭터인 '펭수'가 MBC와 SBS에 출연하고, MBC '놀면 뭐하니?'의 부캐릭터 '유산슬'이 KBS에 출연하는 현상은 과거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경쟁사의 자산을 자신의 플랫폼에 노출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용인되는 배경에는 비즈니스 전략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 과거 미디어 중심의 관점에서는 자사의 콘텐츠를 독점하여 플랫폼의 시청률을 높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IP 중심의 관점에서는 독점보다 여러 플랫폼을 넘나들며 IP 자체의 인지도와 팬덤 관여도를 극대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한 전략이 된다. 확장된 팬덤을 대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전개하면 되기 때문이다.
티빙의 오리지널 콘텐츠 '환승연애' 역시 좋은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방영 당시 시청률 자체는 다른 프로그램에 미치지 못했지만, 온라인에서의 화제성은 압도적이었다. 이는 시청률이라는 단일 지표로 콘텐츠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본방사수 시청률이 아니라, '환승연애라는 IP'를 다양한 형태로 소비하고 다음 시즌과 파생 상품을 기대하는 팬덤의 규모와 충성도다. 시청자가 어디에서 보든, 그들이 '환승연애의 팬'이기만 하다면 비즈니스는 지속될 수 있다.
이처럼 IP를 중심으로 팬덤의 규모와 영향력을 측정하려는 시도는 '콘텐츠 파워 지수(CPI)'와 같은 새로운 지표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고체 미디어 시대에 '미디어의 팬덤'을 대상으로 했던 비즈니스는, 이제 유동화된 이용자들을 파악하기 위해 'IP의 팬덤'을 구심점으로 삼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IP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또 얼마나 깊이 좋아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액체 미디어 시대의 가장 효과적인 비즈니스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콘텐츠IP에 대한 이해, IP비즈니스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 유튜브에 올려둔 부분이라도 마무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 영상에서는 콘텐츠IP가 중요한 이유를 '액체미디어'라는 개념을 통해 접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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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OOgwEy1lrv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