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취향의 영화는 뒷전이 되어버리고....
2022년 10월, 한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지인에게 듄을 무척 즐겁게 보았다는 말을 들었다. 원래 판타지를 잘 보지 않는 편이라 듄을 보러 가는 것도 소소하지만 낯선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검색해보니 IMAX 관에서 듄을 보려면 수원까지는 가야 했다. 낯선 동네로 나가는 경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신이 났다.
처음 가 보는 곳이나 처음 해보는 일은 엄청 검색을 하고 후기를 읽어보며 나름대로 준비를 하려고 한다. 수원 아이맥스 관은 수원 AK 프라자 안에 있었고, AK 프라자는 그래도 한 번 가 본 적이 있어서 그래도 안심을 했다.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대망의 수원행을 나서본다.
영화는 오전 열 시에 시작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밀려서(?) 수원역에는 9시 50분쯤에야 도착을 한다. 이때부터 불길한 기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일단 AK 프라자는 제법 쉽게 찾았다. 그런데...... AK 프라자는 10시 30분에 연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보통 백화점이나 쇼핑몰은 10시 30분에 열지.
그런데 10시에 시작하는 AK 프라자 안의 영화관에는 어떻게 들어가지? 미친 듯이 검색을 하며 영화관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찾기 시작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1년도 더 전의 일인데 그때의 부산함과 아득함이 속속들이 되살아난다. 시간은 어느덧 10시를 넘고..... 10시 15분을 넘고......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면 결국 AK 프라자 밖의 연결통로를 찾지 못했다. 10시 30분에 AK 프라자가 열려서야 들어갔다. 아홉 시 영화면 어쩔 뻔했어. 덕분에 영화는 삼십 분 넘게 놓쳐버리고 헤매는 통에 넋이 빠져 버린터라 원래도 잘 안 보는 취향의 영화에 집중이 될 리 없었다. 황당하고 속상하고 좌절스럽고...... 리산 알 가입이 뭐라고? 어디에 가입하는 건 줄 알았다.
역시 난 역대급 길치에 멍청이야........ 라는 자책 속에 허우적거리다 영화가 끝났다. 그 와중에도 헤맬 때 보았던 폴 바셋이 떠올랐다. 정신도 속도 가라앉히자 싶어 폴 바셋으로 향했다. 미리 챙겨갔던 다이어리를 꺼내서 그날의 (실행) 노트를 적었다.
2022년 10월 13일
-난리법석+ 패닉 끝에 결국 듄을 보았다. 새로운 세계에 잠시 발을 담근 느낌.
-간신히 폴 바셋을 찾아와 커피와 노트 쓰기를 즐기는 중. 마음이 요동을 쳤는데 기록과 루틴으로 돌아오니 한결 차분해졌다.
-‘소소하지만 낯선을’ 계속 시도하는 중에 낯섦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감정을 겪고, 배우고 있다. 무작정 돌진에 마구 헤매며 혼돈의 카오스로 향하는 듯? 종종 겪어보면서 해결책/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뭐, 1년이 넘도록 대단한 해결책은 구하지 못했다. 그냥 계속 돌아다니고 계속 시도하고 길치를 극복하려고 방위를 보고 어쩌고를 조금씩 연습하고 하는 듯. 그래도 노트를 써 둔 덕분에 그날의 나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어서 나름 재미있었다.
듄은 한 번 더 볼 작정이었지만 결국 보지는 못했다. 올해 듄 2가 개봉된다고 하니 나의 첫 관람기가 더욱 새삼스럽다. 다시 한번 보고 2편에도 도전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소소하지만 낯선’ 2편을 쓰고 나서는 한 번씩 혼코노를 하고 있으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영화 한 편 보는 것으로도 온통 난리였던 지난 10월의 기억을 되감아 보았다. 모처럼 다시 펼친 실행 노트 두 번째 권도 썩 반가웠다. ‘어떻게든 계속 하고 있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는 한편, 계속 하는 가운데 조금씩 생기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은근슬쩍 기대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