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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 Jan 28. 2019

시작

2015년 여름이었나보다, 그를 처음 만난 때가.

내 편지함 속 그와 오갔던 편지의 날짜가 그 해 9월이었던 걸 보면...

우리의 인연이 벌써 5년차에 접어들었다니 기함노릇이다.


그해 초 서울시 재생에너지 담당부서 과장 미팅에서, 서울시가 추진하려고 하는 에너지 복지사업에 우리 회사도 참여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바로 경영진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쉽게 재가라도 받아올 수 있는 것 마냥 나는 자신있게 추진을 약속했다.


여러 과제 중에 나는 특히 아래 아이템이 마음에 들었다.

'사내 부지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고 거기서 생산된 전력과 인증서는 전력거래소와 한전에 팔아

거기서 얻어진 수익을 지역사회에 기부...'


왜냐고?

일단 회사 사회봉사단의 예산을 쓰니 우리 부서에 부담지울 일은 없을 거고,

태양광 설치 그 자체와 거기서 생산된 전력과 수익은

온실가스 저감과 사회 기부, 대외 홍보라는 3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로부터 소개를 받아 태양광 관련 모 NGO 사단법인의 B 국장을 찾아갔다.

서로 아다리가 맞았는지 그 건으로 의기투합하는 데까지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곧 바로 국내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가용한 부지를 샅샅이 뒤지기로 했고

그 첫 번째 타켓은 내가 일하는 수원 본사였다.


S부장이라는 사람이 기술자 여러 명을 같이 데려와 직접 와서 1차 현장검토를 진행해야 한다고 한다.

파일로 송부한 본사의 모든 건물 구조도를 보고 난 후, 그는 몇 개 건물의 옥상에 직접 올라가고 싶다고 전화를 해왔다.


현장 검토가 예정된 당일, 나는 근처 건물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같이 어제일도 잘 기억나지 않는 인간이 신기하게도 그날의 내 차림과 날씨는 너무나 선명다.

공순이들이 입는 셔츠 디자인의 반팔 상의와 얇고 구겨지지도 않아 즐겨입던 여름 슬랙스 차림.


하필 비가 주섬주섬 내리면서 바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사실 그 날 S부장과 이동하면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딱 한 순간, 모 건물 옥상에 올라 바람과 비를 맞아가며 그에게 설명을 들을 때

나는 그의 얼굴을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첫 대면에 나는 어떤 인상적인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냥 기술자같이 날카롭게 생겼구나..라는 끄덕임 정도?

키는 나보다 약간 크고, 목소리는 살짝 높은 톤의 비음이 섞인 듯 하지만 꽤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말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고 전달력 있던 목소리는 내 기억 어딘가에 똑똑히 저장되어 있었다.


짧은 만남 뒤, 우리는 오로지 메일 혹은 전화를 통해 다른 사업장의 설치 가능 여부에 대해 천천히 진도를 빼고 있었다.


  



2015.9월


안녕하세요, 부장님.


저희 광주사업장을 알아보고 있는데요

사진으로 봤을 때 적절한지 확인부탁드립니다.

그리고 100kW만이라도 공사할 수 있나요?

저희 임원들께서 적극 설치를 희망하고 계셔서요.

회신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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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보내주신 부지는 위성으로 학인해보니 아래 사진

1과 2에 설치 가능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다만, 인근 도로(국도)에 한전 전주가 있어야 하는데

1. 저희 쪽에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해서,

아래 1(우선 대상부지)의 용도와

2. 옥상 재질(ex. 콘크리트, 슬라브 등)에 대한 정보를 주시기 바랍니다.


** 현재 S부장이 출장중이라 제가 대신 회신보내드립니다.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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