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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배움

저녁 식탁에서의 깨달음과 조용한 즐거움의 순간들

by 김선태 Mar 09. 2025

어젯밤, 저녁식사 자리에서 배움이 었었다. 아내가 차린 밥상에 온 가족이 모였다. 늘 그렇듯 능숙하게 각자의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집안 공기가 더웠던 나는 운동복 윗도리 지퍼를 내리고 밥을 먹었다. 운동복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내 모습이 못마땅했던 아내가 중딩2 하은이에게, 하은아 아빠 브레이지어 갔다 드려라,라고 말했다. 이어 하은이가 지 엄마에게, 내꺼? 하고 물었다.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를 수그리고 국을 떠먹던 나는 웃펐다. 역시 그런 것 같다. 누군가에게 그 무엇을 가르칠 때는 상대가 마음 상하지 않도록 상대의 언어로 정중하게 해야 한다. 아내와 딸아이 대화에서 가르침의 진수를 배우는 하루였다.      

오늘은 아내와 대형마트에 다녀왔다. 엄청난 사람들이, 어마무시한 물량의 물건을 사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텐트 용품 코너를 돌면서, 여름에 꼭 필요한 모기장 텐트를 하나 구매 했다. 그 길이가 상당해서 카트 운전에 꽤나 신경을 써야 했다. 한참을 조심스래 이쪽저쪽 다니는데,  대여섯 분이 통로에서 이야기를 하고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실례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통로를 점거한 그들은 내 얘기를 못 들은 모양인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두세 번 실례합니다를 했는데, 전혀 미동이 없었다. 서서히 기분이 상해지기 시작하려는 찰나. 그 순간이었다. 철저하게 나를 무시하던 이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웃었다. 순간의 깨달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의 웃음에는 소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얼굴은 왜 이리 밝던지. 자세히 보니 그들은 '수화'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수화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의 '손짓'에 집중을 했다. 집중! 상대에 대한 집중이 '조용한 즐거움'의 시작이었다. 드디어 나를 알아챈 몇 사람이 길을 터주었고 나는 입가에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그들을 지나쳤다. 이런저런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주말 오후였다. 어제도 배우고 오늘도 배운다. 역시 배움은 끝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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