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다. 아내에게 걸려 오는 한 통의 전화. 여보! 소주 한 병 사 오든가? 아내가 돼지고기를 다갈다갈 볶아 놓은 게 틀림없었다. 소주 한 병을 손에 들고 슈퍼를 나오는 나는 어느새 넓어진 콧구멍으로 콧노래를 흥얼흥얼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칼칼한 제육볶음에 차디찬 소주를 먹고 맛있게 잤다. 밤이 지나 아침이 되었다.
뜨거운 밥에 계란 후라이를 언고 참기름 몇 방울 똑 똑! 말이 필요 없다. 딸그락 거리는 아침 주방을 얼핏 보니 후라이팬에 작고 둥근, 달 세 개가 떠 있었다. 나는 익어가는 노란 후라이 세 개를 보며, 음...... 계란밥이군. 쪼아! 어라? 근데 왜 세 개지? 하고 생각했다. 한편, 아내는 아침에 항상 바쁘다. 여느 엄마들 같이 나와 아이들의 배를 채운 후 자기 입을 챙긴다. 그런 아내가 짠해서, 허허! 울 각시도 함께 먹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해심이 깊다. 나는 아내에게 궁금한 척하며, 여보! 왜 계란 후라이가 세 개여? 하고 다정히 물었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 건 없어요! 라며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우린 그렇게 유쾌한 아침을 시작했다.
하루가 지난 퇴근길이다. 아침에 계란밥을 아내에게 얻어먹고 퇴근 후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때마침 아내가 나에게 전화해서, 여보! 맥주 딱 한 병만 사 와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혼자만의 상상을 시작했다. '음…. 돼지고기 볶았나? 근디, 왜! 맥주는 딱 한 병이람' 난 흑심을 품고 아내에게, 여보! 진짜 딱~ 한 병? 하고 물었다. 잠깐의 침묵이 밤처럼 어두웠다. 아내가 낮음 음성으로, 당신은 먹지 마! 나만 마실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목숨 걸고 세 병을 사 가며 끄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