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로의 발걸음, 사회적 기업협의회에서

작은 조각들이 모여 내 삶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by 나디아

사회적 기업협의회에 첫 출근하던 날은 내 인생에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던 날이다.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었지만... 정부 지원 사업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나에게 사회적 기업협의회에서의 경험은 내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다. 사업을 영위하면서 일자리 창출, 환경 보호, 취약계층 지원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한다. 정부가 해결하기 힘든 사회적 문제의 틈새를 메우는 기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기업들이 모여 만든 곳이 사회적 기업 협의회였고 협의회는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부지원사업을 수행한다.


나는 공공구매지원사업 담당자로 일하게 되었다. 공공구매라는 말 또한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공공구매는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의 줄임말이다. 정부기관에서 용역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는 예산의 얼마 정도는 사회적 기업, 여성기업, 장애인기업 등에게 우선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그 기업들의 자생력을 도와 그들이 사회적 가치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공공기관 구매 담당자들에게 제주 사회적 기업 상품과 서비스를 연결하고 소개하는 일을 했고, 사회적 기업들에게 공공구매에 대해 교육하는 일을 했다. 공공기관과 사회적 기업을 연결하는 상담회와 사회적 기업 물품을 홍보하는 전시회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이런 일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결과를 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이런 일들을 수행할 때 계획서와 결과보고서를 잘 작성하는 일이다.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계획서를 통해 어떤 일을 수행할 것인지 남기고, 수행 후에는 사진 자료와 함께 어떤 일을 어떻게 했으며, 그것에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를 문서로 작성해야 한다. 공공구매지원사업은 제주도청 사업이었는데 지원사업마다 차이가 있고, 담당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월마다 계획서와 결과보고서를 작성했고, 세부 사업별로 계획서와 결과보고서를 작성했고, 사업비를 사용한 사업에 대한 정산 계획서와 정산완료보고서를 따로 작성했다.


그렇게 서류를 작성하면 같은 내용을 월별, 사업별, 정산별 작성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왜 서류를 비효율적으로 중복 작성하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서류를 작성하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면 정작 진짜 일을 할 시간은 줄어든다. 그야말로 주객전도 아닌가?

서류를 작성하는 시간에 공공기관에 메일이라도 한 줄 더 쓰는 게 나은 것 아닌지 생각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잃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가장 감사하게 한 일은 정부 지원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과 더불어 사업 내용 관련 계획서나 결과보고서를 수없이 작성하면서 서류 작성에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 경험을 통해 지금 내가 직접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는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까지 어린이집에 보내는 시기가 오자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남들 다 하는 맞벌이를 왜 어렵게 생각하냐고 할지 모르나, 아이가 아프거나 방학이 되면, 어떤 갑자기 일어나는 상황에서 나 이외에 아이를 부탁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이라면 다시 일을 시작하는 용기는 실제 현실에서는 물론이고 심리적으로도 높은 장벽이 있다. 그때 나는 내가 아플 때조차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렇게 들어간 곳에서 일을 나에게 미루는 팀장님이나 문서의 내용이 아닌 문장부호 등 문서 작성 자체에 지적을 하시는 이사장님, 같은 업무에 대해서 다양한 양식으로 반복되는 문서를 요구하는 담당 공무원에게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지금은 그분들이 나에게 요구했던 일들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때 그분들에게 가졌던 내 마음에 죄송함을 느낀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시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할 때가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이게 내 인생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드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의미 없게 느껴지는 하찮은 일들이라도 인생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조각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사회적 기업협의회에서 배운 문서 작성법과 기획,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일들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는 큰 결과를 가져온 것처럼 말이다.


"작은 조각들이 모여 내 삶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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