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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나온 사람들의 총합

5화 : 스펀지 같은 사람이 되어볼 것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늘 견디기 힘들었던 게 있다면 바로 저 자신일 겁니다. 나와 30년쯤 같이 살아보니 정말 고치고 싶은데 고쳐지지 않는, 그래서 그냥 이런 나를 인정하고 데리고 살 수밖에 없겠다 결론을 내린 면이 있습니다. 저에게 그런 면은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었죠.


'불호'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서 시작되곤 했어요. 정 많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엔 의리가 없네. 소신은 강한데 다른 사람의 의견은 하나도 받아들이질 않네. 전자의 면만 봤을 땐 좋아 보이던 사람이 후자의 면을 발견하는 순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저런 면이 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거리를 둔 건지도 모르지요. 이렇듯 사람은 한결같은 면만을 보여줘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던 제게 어느 날 후배가 이런 말을 건네더군요.


"카피님은 A랑 B한텐 한없이 따뜻한 선배인데, 저한테만은 너무 차가우시더라고요. 그게 좀 서운했습니다."


평소 저와 성향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일정 거리를 두고 지내던 후배가 제게 꺼낸 말이었습니다. 그동안 고치고 싶지만 고쳐지지 않은 저의 단면을 마주한 순간이었지요. 사람은 누구나 입체적이어서 어떤 면을 더 오래 보고, 어떤 면을 더 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하니까요. 그러고 나니 제가 일찌감치 거리를 두고 지내던 사람들과 실망감이 너무 커서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이 과연 나쁘기만 했던 걸까. 단순히 나쁘다고만 판단해 버릴 일이었을까.


다행히도 저의 호불호 강한 성격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첫 만남에 누군가의 장점을 금세 발견하는 특기를 갖고 있어서 제가 발견한 좋은 면에 의도적으로라도 집중해보려고 해요. 앞서 적은 내용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해가 조금 더 쉽습니다. 가끔 이기적이긴 해도 따뜻한 면을 잃지 않네. 의견을 잘 굽히진 않지만 소신을 지킬 줄 아네. 그게 반드시 근사한 모습이 아니라 못난 모습이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저의 삶에 교훈을 남길 거라 생각해요. 저렇게 행동하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저렇게 행동하면 상처받은 사람일지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겠구나. 저의 것으로 어떻게 소화할지 생각하고, 저만의 관점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고 보면 지금의 제 모습 역시, 지난 시간 동안 만나온 사람들의 총합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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