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아쿠아플라넷에 갔던 날, 기프트샵에 있는 핑크퐁 인형을 보고선 아이가 사달랬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저건 살 때만 좋아하고, 집에 가면 방치될 인형'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게다가 평소라면 만원이어도 안 살만한 인형을 3만 원 넘는 가격에 사고 싶지 않았다.
다른 걸로 아이 눈길을 돌리게 하려는데, 남편은 그런 날 의아해했다. 나는 집에도 장난감 많은데 굳이 왜 또 장난감을 사냐고 했고, 남편은 여행 와서 애가 갖고 싶어 하는 거 하나 못 사주냐는 입장이었다.
나는 사지 말자, 남편은 사주자 티격태격하는 걸 아이가 들었다 보다. 아빠가 인형을 사 오자마자 '얼마예요?' 묻더니 3만 3천 원이라고 하자, '좀 비싸네요?' 했다. (돈에 대한 감각 전혀 없는 여섯 살인데, 내가 비싸니까 사지 말자고 한 이야기를 듣고 한 말이다)
아이가 비싸다는 말을 하니 애 앞에서 괜한 말을 했다 싶어 후회가 몰려왔고,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내게 애한테 왜 저런 생각을 심어주냐고 했다.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은 어린이날이나 생일, 크리스마스 등 때마다 큰 선물을 안겨주셨지만 즉흥적으로 사달라고 하는 장난감은 안 사주는 편이었다.
놀이공원 가면 커다란 풍선이나 왕관, 끌고 가면 나비가 날갯짓하는 플라스틱 장난감 등이 있었는데 그걸 가져본 기억은 거의 없다. (마음속으로 늘 갖고 싶긴 했지만, 안 사줄 거란 걸 아니까 눈으로만 봤다)
가끔 손주를 봐주시는 우리 부모님은 먹는 것과 입는 것, 그리고 나들이 데리고 가는 것엔 아낌없지만 아이가 즉흥적으로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은 여전히 잘 안 사주시는 편이다. 아이가 무턱대고 집어 드는 장난감이 10만 원을 육박하는 것도 많기 때문에 안 사주는 게 내 마음도 편하다.
반면 시부모님은 어딜 가도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건 사주시는 편이다. 아이가 시부모님과 나들이 다녀온 날은 항상 한 손에 커다란 풍선이 쥐어있고, 가방에선 다신 갖고 놀지 않을 법한 아이스크림 가게 장난감 등이 나온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다녀온 날은 대체 얼마 주고 샀을까 궁금할 정도로 커다란 장난감 박스를 들고 오는 날도 있다.
뭐가 맞다, 틀리다 할만한 문제는 아니고 내게서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남편에게서 시부모님의 모습이 보이는 게 신기했다.
여행지에서 남편, 아들과 함께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각자 먹을 빵을 고르는데 아이는 알록달록한 케이크를 골랐다. 식사 대용으로 먹는 거니 빵을 고르라 했더니 자기는 케이크가 좋단다. 딱 봐도 케이크가 관상용이길래 빵을 먹으라고 달래려는 나와 달리, 남편은 '우리도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고르는 것처럼 얘도 먹고 싶은 거 사게 해주자'라며 결국 케이크를 샀다. 역시나 반도 안 먹고 남겼지만 아이는 케이크를 보면서 행복해했다.
‘가성비’를 떠나 생각해보니 남편 말대로 아이가 여행지에서 만난 핑크퐁 인형을 데리고 온 기억, 알록달록 케이크를 직접 골라서 먹는 재미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일상에서 조차 내가 너무 가성비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아이가 사고 싶다는 걸 모조리 사줄 순 없지만, 때때로 아이가 선택하는 걸 존중해줘야지.
나도 모르게 내게 녹아든 우리 엄마 아빠의 모습이 꼭 최선은 아니니까.
아주 오래전, 아빠가 삼촌에게 ‘애들 어릴 때 자잘하게 사준 거 어차피 기억도 못해. 그 돈 모아 나중에 큰 걸 해주는 게 낫지'라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어릴 때 놀이공원 갈 때마다 기념품 가게에서 풍선이나 인형 머리띠가 갖고 싶었던 마음을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어차피 여기선 엄마아빠가 안 사주니까'라고 생각하며 눈으로만 봤던 걸 서른을 훌쩍 넘은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면 말이다(그렇다고 그게 결핍의 기억으로 남아있진 않지만)
아빠랑 롯데월드를 수없이 갔지만 기념품샵에서 뭔가를 사본 기억은 없다. 반면 아빠는 ‘경험'이나 '추억’에는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30년 전쯤 롯데월드에 가면 후렌치 레볼루션, 후룸라이드 같은 역동적인 기구를 탈 때 순간 포착해주는 사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즉석 인화해주는 사진이라 꽤 비쌌는데 그런 거엔 지갑을 잘 여셨다. 또 롯데월드에서 집에 가는 길에 잠실 아이스링크장을 쳐다보고 있으면 ‘저것도 타고 싶으면 타고 가자’고 했다. 잡다구리한 장난감은 안 사주셨지만 해보고 싶다는 건 거의 다 하게 해 주셨다.
(요즘 유행하는 '소유보단 경험'을 우리 아빤 30년 전에 실천하고 있었던 건가)
핑크퐁 인형을 사주느냐와 같은 고민은 늘 도처에 있다. 현관만 나서면 손 뻗는 어디든 소비의 유혹으로 채워진 세상에서 어느 정도로 아이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건지 고민이다.
30년 전 우리 아빠라면 이 핑크퐁 인형을 사줬을까, 아니면 얼른 시선을 돌려 기념품 가게 밖으로 데리고 나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