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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리아 Mar 02. 2020

아빠가 머리 빗겨주던 날들

어린 시절 우리 남매 아침 풍경은 달랐다. 오빠는 주말에도 일찌감치 일어나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고, 나는 아침 먹자고 엄마 아빠가 격렬하게 깨우면 그제야 겨우 눈을 떴다.

엄마는 지금도 말한다. "오빠는 늘 '아침이다' 한 마디 하면 바로 눈을 떴는데, 너는 엄마 아빠가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거실로 끌고 나왔다"고.


나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는 게 세상 제일 괴롭고, 할 일이 있으면 밤에 하고 잘 지언정 다음 날 아침에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한다.


이런 나에게 일찍 등교해야 하는 고3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나마 하루하루 보낼 수 있었던 건 엄마 아빠 덕분이다. 일어나면 엄마가 준비한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아빠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데려다줬다. 데려다 줄만큼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매일 아침 내 머리를 말려주셨다. 당시 두발 자유인 학교라 머리카락이 길기도 했고, 게다가 머리숱이 많아서 머리 말리는 데에 아침에 많은 시간이 들었다.


혼자 급히 머리를 말리다 보면 머리카락을 탈탈 터느라 두피가 아플 때도 있는데, 아빠가 해줄 땐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두피부터 바싹 말리고 점점 내려와야 잘 마른다’며 머리칼을 탈탈 털며 착착 머리를 말렸다. 전문가처럼 옆가르마를 휙 탄 다음 헤어드라이기가 두피부터 바람을 내기 시작해 머리 끝까지 점점 내려왔고, 또 반대편으로 옆가르마를 탄 다음 같은 동작이 반복됐다.




사실 나는 그 기억을 잊은 지 오래고, 그게 특별한 기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는 매일 아침 아빠가 내 머리를 말려주는 그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가족 모임이 있을 때면 종종 말하곤 한다.


반면 아빠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서 잊어버린  알았다. 그런데 서른살이 훌쩍 넘은 어느 , 부모님 집에서 머리를 감고 헤어드라이기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말려줄까?' 물었다. 왠지 쑥스러운 마음에 '아니 . 내가 할게'라고 짧게 답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던 3월부터, 수능 봤던 11월 말까지 평일이 며칠이었을까 가늠해보니 약 200일이다. 하루 10분이라고 치면 최소 2,000분은 아빠와의 유대감을 쌓았던 시간이었겠다. 그리고 학교까지 아빠 차로 20분은 걸렸으니, 4,000분의 등굣길을 아빠와 함께 했겠다. 머리 말려주는 시간과 차로 데려다주던 시간을 합치면 6,000분. 고3 시절, 부모 자식 간에 얼굴 맞대기 쉽지 않은데 아빠 덕분에 이 시간만큼은 함께 했구나 싶다.


아빠는 술을 정말 좋아하시는데, 과음해서 새벽에 집에 들어온 날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그 시간에 일어나 움직인 건 오로지 날 위해서였다.


학교 가는 길에 내가 부족한 잠을 자며 갔는지, 아니면 아빠랑 대화하며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17년 전의 나라면 아마 고맙다는 표현도 하지 않았을 거고, 살갑지도 않았을 게 분명하다.



내 아이가 다섯 살이던 작년, 어린이집 등하원을 위해 운전을 배우고 매일 아침 내가 직접 등원을 시켰다.

봄, 여름엔 내가 등원을 맡고, 가을과 겨울엔 남편이 맡았는데 가을이 되니 문득 내가 등원시키던 시절이 아련하게 그리워지기도 했다. 매일 아침 어린이집 문 앞 같은 위치에서 사진을 남겼는데, 그 사진을 볼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등원길에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골목을 지날 땐 '친구네 집이다'를 외치기도 하며 추억이 켜켜이 쌓였다.


아마 아이는 그 장면들을 온전히 기억하진 못할 것이다. 지금 내가 17년 전 등굣길 아빠 차에서 잠잤는지, 대화했는지 기억 못 하는 것처럼.


아이의 다섯 살 등원 길을 내가 추억이라고 생각하듯, 아빠에게도 내 고3 시절 등굣길이 추억이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러고 보니 그땐 아빠가 40대였다는 사실이 더 놀랍네. 우리 아빠 참 젊었구나.


고3 시절이었던 17년 전이 정말 얼마 전 같은데, 같은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면 나는 50대 초반, 아빠는 80대가 된다. 순간 머리가 아찔해진다. 그때의 나는 17년 전 아빠를 어떻게 기억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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