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실리아 Jan 07. 2021

아빠의 커피우유

"네 아들 예쁘지? 우린 네가 더 예뻐"

고등학생 시절과 20대 초반에 커피우유를 좋아했다. 특히 삼각형 모양으로 된 포리 커피우유를 좋아했다.


지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카페가 많지 않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집만 나서면 커피 살 곳이 많고, '스세권'에 살게 된 이후엔 맛있는 커피를 자주 사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는 내가 오는 날이면 늘 삼각 커피우유를 사놓는다. 너무 많이 사놔서 내가 부모님 집에 머무는 동안 다 마시지 못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올 때 아이스팩에 싸와야 할 정도다. 그래서  '예전만큼 이걸 좋아하지 않으니 사놓지 말라'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다. 하지만 갈 때마다 냉장고엔 매번 삼각 커피우유가 있다.


우리가 간다는 연락을 하면 엄마 아빠는 분주해진다. 아빠는 삼각 커피우유와 함께 내 아들의 짜요짜요를 사면서 우리 맞을 준비가 시작되고, 엄마는 챙겨 보낼 반찬을 만드느라 바쁘다.



얼마 전 우리 부부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부모님 집에 가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모님 집에 가야 했다. 남편까지 가면 5인 이상이니 아들과 나만 갔다. 빈 집에 아들과 들어가는데, 신발을 벗는 순간 심란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는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짐을 풀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삼각 커피우유가 있었다. 간다고 확답을 안 하고 '갈 수도, 안 갈 수도 있다'라고 말했는데, 혹시나 내가 올까 봐 아빠가 사두신 거였다.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같은 냉장고 칸



우리가 돌아가기 전 날, 엄마는 반찬 하느라 분주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낙지볶음, 내가 좋아하는 진미채, 내 아들이 좋아하는 깍두기, 그리고 반찬 없을 때 편히 먹을 수 있는 장조림과 계란전, 그리고 입맛 없을 때 먹을 구운 계란 등을 트렁크 가득 넣어 집으로 돌아왔다.




언젠가 아이를 달래고 있는 내게 아빠가 말했다.

“네 아들 보고 있으면 예쁘지? 근데 우린 네가 더 예뻐"


감정 표현 잘하는 아빠의 딸바보 표현은 어린 시절엔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고, 사춘기 시절엔 듣기 싫기 싫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다정한 말들이 내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매번 학교까지 날 태워다 준 후, 교문을 향하는 내게 “오늘도 파이팅, 우리 집 가문의 영광!"을 외쳐줬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줬다. 어떤 일이든 "네가 그걸 할 수 있겠어?"라는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대부분의 딸이 그렇듯 아빠와의 사이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춘기 어느 날, 아빠랑 둘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아빠가 무심하게 툭 "너 아빠가 불편하냐?" 물어본 적이 있다. 순간 당황해서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조금 불편했던 거 같기도 하다. 아빠는 지나가듯 가볍게 물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물어볼지 고민하며 고심 끝에 던진 말이라는 걸 안다.


사회 초년생 땐 나랑 마주 앉으면 "요즘 회사 일은 잘 돌아가?"라고 물었다. 왜 이리 매번 똑같은 말만 묻는지 의아했다. 공통 관심사가 없는 딸과의 대화를 시도하려는 아빠의 노력이었다는 것도 이제 알겠다.


이번에도 부모님 집에서 지내는 3일 동안 커피우유는 다 마시지 못하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부지런히 커피우유를 마시다 보니 아빠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엄마아빠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툴지만 따뜻했던 엄마아빠>를 쓰는 중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jhy


이전 03화 우리 아빠라면 이 인형을 사줬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