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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Apr 13. 2024

20240407~0410

2024_0407(일)

 코에서 악취라니 

 별 것 아닐 거라 생각했던 감기가 몸살기운도 동반하더니 스멀스멀 장기전을 펼칠 기색이다. 최근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부지런히 내 몸을 점령해 버렸다. 악은 부지런하다는 게 이럴 때 쓸 표현은 아니지만 여하튼 나쁜 것들은 참 부지런히도 지긋지긋하게 나타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수요일에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고 약도 타왔지만 여전히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코에서 냄새가 난다. 코로나 3번이나 걸려봤지만 이런 증상은 없었는데, 코에서 암모니아 냄새 비슷한 악취가 나는데 정말이지 불쾌한 경험이다. 외부에서 나는 악취가 아니라 내부에서 맡게 되는 악취라니. 이건 마치 적이 내부에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방관하는 느낌이다. 

 일요일은 병원에 갈 수 없으니 내일 꼭 다른 병원(이비인후과)에 가봐야지. 감기에게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약의 기운을 빌어 코스트코에 가서 장도 보고, 집 근처 공원도 가볍게 산책했다. 너무 움직이지 않고 웅크리고 있으면 몸도 마음도 병들 테니 기를 쓰고서라도 돌아다녔는데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분이 처지는 것은 막아준 게 확실하다. 




2024_0408(월)

 아픈 사람 천지 

 월요일 아침 일찍 이비인후과에 갔지만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찾아온 사람들로 이미 넓은 대기실이 가득 차 있었다. 환절기라 아이,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쿨럭쿨럭 훌쩍거리며 병원을 찾았다. 차라리 좀 더 늦게 올걸 그랬나 싶었지만 이미 온 이상 기다리는 수밖에. 한 시간 10분 정도를 대기하다가 간신히 진료를 받았고 의외로 의사가 증세가 심하지 않다고 해서 허탈했다. 아무래도 의사의 기준과 내 기준이 다른 것 같다. 잇몸도 붓고 입천장도 헐어버린 데다가 약을 안 먹으면 코가 뒤로 넘어가서 가래가 끓고 있는데 고열에 곧 쓰러지게 생긴 상태가 심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 그래 나는 심한 증상은 아니고 불편한 증상이구나 하고 처방약을 받아서 터덜터덜 돌아 나왔다. 코 안에서 냄새난다는 이야기는 안 했다. 보나 마나 별 거 아니라고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기도 하고, 하루종일 그 냄새가 나서 정말로 엄청 불편한 건 아니기도 해서.

 돌이켜보니 전과 달라진 게 있다. 아플 때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편한 시간에 병원에 방문할 수 있다는 것. 병원 가서도 계속 폰으로 회사 메신저 보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생활. 아프면 병원에 마음 편히 갈 수 있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지는 삶이라니 이전의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어쩌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여전히 그렇게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4_0409(화)

 두근두근 화상면접

 요 며칠 고민하다가 실업급여 수급 종료 전에 빨리 취업하는 게 낫겠다 싶어 지원할 만한 곳을 찾고 있었는데 공개해 둔 이력서를 보고 제안이 온 곳이 있었다. 양식에 맞게 지원서를 작성해서 보내고 난 뒤 면접 일정을 조율하는 연락을 받았고, 오늘 오후에 화상면접으로 일정이 잡혔다. 그동안 채용하는 입장으로 화상면접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그 반대의 입장으로 화상면접에 참여하려니 기분이 묘했다. 

 긴장도 잠시, 면접관 분들의 유연한 진행과 아이스브레이킹으로 분위기는 편안해졌다. 내가 면접관이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과연 나도 저렇게 면접을 진행했던가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지금 나는 면접관이 아니라 면접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최대한 충실히 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아서 당황하는 일은 다행히도 없었고 어느 정도는 예상한 질문이라서 막힘 없이 답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아쉬움이 남을 면접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면접 통과 후에 실무 테스트가 있고, 또 인성, 직무 테스트가 있어서 입사까지는 허들이 많이 남았지만 일단 면접만이라도 패스하고 싶었다. 서류를 내고, 면접을 보고 거절의 메시지를 하도 여러 번 들었더니 마음의 상처가 생긴 탓이다. 오늘 긴장하지 않고 준비한 내용 잘 답변한 나, 잘했어. 이제 결과 여부에 상관없이 후련하다고! 



2024_0410(수)

 달콤한 휴일

 어제 면접을 마음 편히 잘 치러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 오랜만에 달콤한 숙면 후 아침을 맞이했다. 한 번도 깨지 않고 9시간 정도 푹 잔 것 같다. 매일 이렇게 자는 사람은 그게 뭐 별건 가 싶겠지만 나처럼 수면의 질이 안 좋은 사람에겐 아주 특별한 날이다! 하룻밤 숙면으로 컨디션이 말짱해질 정도로 좋아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나빠지는 것도 좋아지는 것도 한순간에 그리 되는 것 같지만 대부분은 천천히 쌓여서 그렇게 된다. 그걸 인지하지 못할 뿐. 의사말대로 심각하게 안좋은 건 아니었을지도.

 예약을 미루고 계속 못 갔던 필라테스 수업도 예정대로 갈 수 있었다. 선거로 공휴일이었지만 하도 수업을 딜레이 시키고 참여하지 못한 우리를 배려해 강사님이 수업 예약을 잡아두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시원하게 풀고, 필라테스 스튜디오 바로 맞은편에 오픈한 카페에 들러 카푸치노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고 가격도 저렴해서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에 브랜드 카페가 아닌 정말 동네 카페로서 커피가 맛있던 곳이 얼마 전 문을 닫아 씁쓸했는데 새로운 참새방앗간을 찾은 기분이다. 소중한 동네 카페!

 모처럼의 휴일이고 우리는 사전투표를 마쳤기에 아웃렛 쇼핑을 다녀오기로 했다. 나이키 팩토리에서 할인된 제품 가격에 추가로 25% 할인도 하고 있어서 남자친구와 각자 옷 한 벌씩 저렴하게 구매했다. 예전 같았으면 세일을 추가로 한다니 이건 기회라면서 서너 벌은 사고도 남았겠지만 이제는 정말 딱 필요한 것, 사고 싶은 것 한 벌만 사는 사람으로 변한 나. 연초부터 지금까지 수기로 지출 기록하고 결산 내는 것도 빠지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꾸준함을 칭찬해! 

 올해 재물운세에 주식/부동산 투자 가급적 하지 말고 특히 대출받아서는 절대 하지 말고, 소소한 지출을 막으라고 했는데 딱 필요한 조언이긴 했다. 어차피 주식/부동산은 할 생각이 없었고 할 형편도 아니다. 빚 내서는 더더욱 할 생각이 없다. 가계부를 써보고 결산하는 걸 몇 번 하고 나니까 그동안 작은 규모의 돈이 모이고 모여 지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5만 원 미만의 지출은 쓸 때는 작게 느껴지지만 모여서 큰 지출이 되어버리는 데 얼마 안 걸리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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