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빠 Mar 10. 2024

엔지니어의 특허 쓰는 법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돼요. 그런데 권리를 주장하려면 특허를 써야돼요.


지난 글에서 말했듯, 엔지니어 본인 커리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글쓰기는 논문과 특허다. 명시적 이력으로 남아 경력을 간접적으로 증빙해 주기 때문이다.


테크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종사하다 보면 특허를 쓸 일이 꽤 많다. 논문 쓰기는 연구직에 국한되는 반면, 특허는 거의 모든 엔지니어 직종에서 쓰기를 권유받는다. 후술하겠지만 치열한 경쟁관계에 놓여있는 첨단 테크 기업 간에 기술 보호용 법적 장치로 현재 '특허'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양적 질적 특허 보유가 곧 경쟁력이다. 직원에게 특허 작성을 적극적으로 주문하는 이유다. 연초에 직원들이 목표를 설정할 때 작성할 특허의 수를 명시하고, 고과에 반영하기도 한다. 또한 특허를 작성해 출원하면 회사로부터 소정의 보상금*도 지급받기 때문에 나름대로 동기부여도 된다.

*사실 특허를 썼기 때문에 주는 보상이라기보다, 특허를 작성한 직원이 가지게 될 권리를 회사로 양도함에 따른 보상이다. 일종의 위로금인 셈이다.


오늘은 이 엔지니어의 특허 쓰기에 대해 알아본다. 특허는 왜, 누가, 어떻게 쓰는지를 다룰 것이며, 엔지니어 본인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테크 회사에게 특허란 어떤 의미인가


지적 재산권 특히 특허는 기술 기업에게 매우 중요한 무형의 자산이다. '발명'을 통해 도출된 자사 기술의 독점 소유권, 사용권을 법적으로 획득하여, 타사에 의해 무단으로 도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라이선스 협약 등 그 자체로 경제적 이득까지 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미디어에서 빅테크 기업들 간 특허 소송전에 대한 뉴스들을 보았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1, 2012년 애플-삼성, 2012년 야후-페이스북, 2014년 NVIDIA-삼성간 벌어진 사례가 있었고, 현재에도 미국 여러 주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타사가 자사의 기술, 디자인을 도용한 것이 의심되었을 때, 회사는 변호사들과 논의해 고소장을 작성후 연방 법원에 제출한다. 소장에는 침해 주장, 요구 손해 배상 종류와 금액, 침해 행위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담는다.


소송을 당한 회사도 법적 대응에 나선다. 일단 해당 특허에 대해 침해 사실을 부인하고, 원고 측 특허의 무효성을 주장한다. 이미 존재하거나 공개된 유사 기술을 찾아내 원고 측 권리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만일 이도 어려우면, 원고 측이 피고 측 기술을 침해한 사례를 역으로 찾아내기도 한다. 다른 기술 건으로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맞고소 하기 위해서다.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 상호 고소 취하를 이끌어 내는 전략이다.


특허가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공격 및 방어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고소 취하, 교차 라이선스 체결 등 원만하게 해결되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특허 분쟁에서 패소시 피고 측 회사는 원고 측에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침해자가 특허를 무단으로 이용해 이익을 얻었다면, 해당 이익을 특허 소유자에게 모두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배상금이 막대한 이유는 피고 측 매출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제품 출시 전이라 아직 매출이 없다 해도 피해는 마찬가지다. 제품의 출시자체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손해 배상금을 책정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쉽지 않다. 분쟁 특허가 해당 제품에 얼마큼 기여했는지를 산정하는 것이 까다롭고 제품의 성격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2011년 스마트폰 UI 디자인을 베꼈다며 삼성이 애플에게 고소를 당했고, 7년에 걸친 소송전 끝에 삼성은 애플에게 6000~7000억원의 배상금을 물어줘야 했다. 그 과정에서 삼성은 애플이 자사의 통신 특허를 침해했다며 맞고소 전략을 펼쳤고, 최초 제기된 미국에서의 소송이 9개국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지리한 소송전은 삼성이 배상금을 물면서 종료되긴 했지만, 미국을 제외한 9개국 소송 취하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이 보유한 '통신' 특허를 무기로 방어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2014년 NVIDIA가 삼성과 퀄컴을 상대로 GPU 특허 소송을 제기했을 때 삼성은 일체의 배상금 지불 없이 합의를 이끌어 냈다 (구체적 합의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삼성이 가진 메모리 특허를 무기로 맞고소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 두 소송전에서 삼성이 잘 방어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통신과 메모리 분야의 핵심 특허를 보유 중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세계 연간 특허 출원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가 바로 삼성이다. 2023년 작년 한 해만 9,036건을 미국 특허로 출원했다 [1].


특허 분쟁은 회사간 멱살잡이와 같다. 이미치 출처=예나빠 태블릿


따라서 기업은 특허 확보에 사활을 건다. 자사 기술이 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혹시나 소송전에 휘말렸을 때 상대방에게 역공을 가하기 위해서다. 테크 기업이라면 특허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 직원에게 특허 쓰기를 장려하며, 변리사들로 구성된 전담 조직을 별도로 둔다.



특허 출원 절차와 시기


아이디어가 발굴되고, 그 신규성과 원천성을 담보할 수 있으면 곧 특허 출원을 시도할 수 있다 (논문처럼 구체적인 실험 결과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엔지니어가 특허를 쓰는 기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연구 개발 진행 중 특허성 아이디어가 도출되면 언제든 특허부서와 협의해 작성을 시작한다.


회사마다 자체적으로 특허 신고 프로세스가 정착되어 있다. 통상 특허를 특허청에 출원하기까지의 절차는 발명 신고서 작성 -> 동료 리뷰 -> 변리사 면담 -> 특허 출원서 작성 -> 특허청 출원으로 이뤄지는데, 엔지니어는 발명 신고서 작성부터 변리사 면담 단계까지만 관여한다.



엔지니어는 회사의 표준 양식에 따라 발명 신고서를 작성하게 되고, 신고가 이뤄지면 사내에서 별도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논문 제출 시 학계 인사들의 리뷰를 받듯이 사내 직원들로 구성된 특허 위원회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 회사마다 리뷰 절차는 다른데, 발명자가 위원들 앞에서 직접 발표를 하기도, 위원회가 문서만 읽고 일괄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특허 리뷰 과정을 통과해 출원이 결정되면, 해당 발명에 대해 전담 변리사가 할당된다 (변리사는 통상 자사의 특허 부서가 아닌, 회사와 계약관계에 있는 외부 로펌 소속이다). 엔지니어는 변리사에게 발명에 대한 아이디어를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시킨다. 출원서 전문을 쓰는 것이 변리사이기 때문이다. 변리사는 출원서를 작성 후 발명자의 최종 검토를 받아 이를 특허청에 출원하게 된다.


특허가 특허청에 '출원'되면, 특허청 심사부서는 출원된 특허의 신규성을 따진다. 특히, 특허 출원서에서 주장하는 권리 범위(청구항)를 꼼꼼히 분석한다. 주장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기존 특허의 권리와 충돌하는 경우 검토 의견과 함께 반려하기도 한다. 이때 변리사는 발명자인 엔지니어와 협의해 범위를 재조정하고 수정 출원서를 다시 제출한다. 이러한 특허청과 변리사간의 몇 번의 핑퐁게임을 거쳐 심사가 완료되면 최종적으로 특허로 '등록'되게 된다. 출원부터 등록까지 통상 1~2년의 과정이 소요된다.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연구원들도 특허를 쓴다. 차이점은 작성 시점이 보다 명확하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논문을 발표하기 전 논문 내용을 특허로 출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논문으로 출판/발표하려는 내용에 신규성과 원천성이 있다면 반드시 특허 출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 논문이라고 반드시 신규성, 원천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조합 또는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경우, 신규성은 없지만 논문으로 인정받을 수는 있다. 이 경우 논문 제출 시 특허 출원을 할 필요는 없다. 또한 통상 특허는 '방법 및 장치(Method and Apparatus)'를 다루기 때문에 장치화가 어려운(하드웨어로 구현될 수 없는)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의 경우 특허 제출에 제약이 따르기도 한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논문 발표의 목적은 기술 선점을 위해서다. 하지만 논문 발표 자체로 법적인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 특허로 출원되지 않은 상태에서 논문으로 발표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개 기술, 오픈 소스와 마찬가지로 취급될 뿐이다. 따라서 논문이 외부로 공개되기 전 반드시 특허로 출원해야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회사는 논문 제출 시 관련 특허가 제대로 출원되었는지 엄격히 관리한다. 사내 특허팀 변리사들이 특허의 도면과 논문의 그림을 일대일로 대조해 가며 검수하곤 한다. 혹시 특허에 명시되지 않은 기술이 논문을 통해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발명 신고서 작성 요령


엔지니어가 특허를 출원하는 과정에서 직접 진행하는 글쓰기는 '직무 발명 신고서'(미국 회사에서는 이를 IDF(Invention Disclosure Form)라고 한다)다. 특허도 일종의 '설득'을 위한 글이기 때문에, 논리를 체계적으로 세워 잘 전개해야 한다. 특허가 논문과 다른 점은 소위 청구항(Claim)이라 부르는 '권리 범위'를 명시하는 것이다. 특허의 핵심이 바로 이 청구항이다. 내 발명의 원천성과 그 권리를 어디까지 주장할 것인지에 따라 특허의 가치가 판별 나기 때문이다.


발명 신고서는 전술했듯 회사마다 표준 양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식의 항목을 잘 채워 넣으면 된다. 출원서 전문이 아니고 신고서이기 때문에 분량도 그리 많지 않다. 통상 A4지 3~4페이지 정도면 충분하다. 논문 작성처럼 작성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명심할 것은 발명 신고서를 소비할 고객은 '사내 특허 위원회'와 '변리사'라는 것이다. 이들은 발명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경 설명에 지나친 지면 할당을 할 필요가 없다.


양식이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통상 신경 써서 작성해야 할 항목은 대동소이하다.


이 발명으로 해결하려는 문제


논문과 마찬가지로 '문제'를 잘 설정해야 한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본 '발명'이 이뤄졌는지 구체적이며 명시적으로 기술한다. 문제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배경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초점이 흐려지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 사항만을 간명하게 기술한다.


선행 기술 (Prior Arts)


발명의 아이디어와 연관된 이전 기술에 대해 기술한다. 논문에서 작성하는 '관련 연구 섹션'과 유사하다. 같은 문제를 놓고 풀려했던 다른 해법들을 아이템별로 장단점을 짧게 논한다. 논문 작성 시처럼 서사가 있도록 구성할 필요는 없다.


발명자는 이미 논문, 스펙과 같은 공개된 타사 기술들을 인지하고 있고, 이와 다른 독창적이라는 아이디어라고 판단해 발명 신고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발명자가 기존에 출원된 모든 특허를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신고서가 접수되면 이후 변리사가 별도의 선행 기술 조사를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연관 선행 기술이 추가되기도 한다. 동일한 아이디어가 발견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를 진행하게 된다.


여기서 선행 기술을 다루는 한국과 미국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미국은 발명자인 엔지니어가 선행 특허, 경쟁사 특허를 읽는 것은 철저히 삼간다. 아이디어가 오염될 여지도 있고, 혹여나 타사에게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을 때, 원고 측 특허를 인지한 상태였는지가 재판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Google Patent와 같은 공개된 특허 저장소의 문서를 여는 순간, 어딘가에는 내 IP 주소가 로그로 남고 이 IP 주소가 내 회사 IP 범위 내라는 것이 드러나면, 빼도 박도 못한 증거로 남게 된다. 특허 침해를 '의도적'으로 한 것으로 해석되어 배상금은 훨씬 늘어난다.


따라서 미국 회사들은 특허 분석이나 선행 기술 조사를 철저히 특허팀 내에서만 수행한다. 엔지니어는 논문, 스펙, 기사와 같은 공개된 기술 문서들에만 접근해 선행 기술을 파악하고, 혹시나 출원하려는 발명이 기존 특허와 충돌하면 특허팀이 법무적으로 해결한다.


한국의 경력자가 미국 회사로 이직 시 이를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팀원 간 타사 특허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삼가야 한다. 엔지니어가 알면 안 되는 정보를 알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입이 방정이다. 이미지 출처=예나빠 태블릿


발명의 원리


도면과 함께 발명의 구체적인 원리를 기술한다. 논문의 '본문 섹션'에 해당한다. 유의할 점은 도면은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모순에 가까운 말인데, 전술했듯 권리 범위를 최대한 넓게 잡는 것이 특허의 핵심이다. 장치 도면을 너무 세세하게 그리면 권리 범위가 협소해져 특허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렇다고 '입력부 -> 처리부 -> 출력부'처럼 너무 추상적으로 묘사해 권리를 광범위하게 주장하면 특허 등록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발명이 말하는 장치의 구체성은 띠되 동분야 기술군에 넓게 적용될 수 있도록 일반화시켜 그려야 한다. 이런 것은 사실 변리사의 전문분야다. 통상 변리사가 출원 전문작성 시 적절히 수준을 판단해 도면을 수정 보완해 주기도 한다.


실시예 (Embodiment)


권리 범위를 넓게 잡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실시예'를 가능한 많이 추가하는 것이다. '실시예'란 발명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 실제 예시로 보여주는 것이다. A라는 발명 아이디어가 있다면, A가 적용되었을 때 A1, A2, A3, A4와 같은 구체화된 사례가 있다는 식이다. 이것은 최종 제품의 형태, 도면의 변형이 될 수도 있다. 복수의 실시예 사이에서 장치 구성상 블록의 순서나 종류가 달라질 수 있고, 블록 간 연결에서 변형이 있을 수도 있다.


실시예는 많을수록 장땡


중요한 점은 실시예가 많을수록 발명의 유효성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구체성이 높아지고, 구현 방법이 명확해져 권리를 주장하기 용이해진다. 특히 특허 소송시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데 중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범위, 구현 방법이 명확하게 기술되었기 때문에, 침해한 정황이 이 실시예에 포함되었다면 침해 사실을 더 강력히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발명자는 신고서 작성 시 가능한 많은 실시예를 생각해 추가해야 한다.


청구항 (Claims)


특허 작성 시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특허의 권리 범위를 직접 기술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상 변리사가 출원서 전문을 작성할 시 가장 신경을 쓴다. 특히 미국 특허의 경우는 청구항의 수에 따라 출원 비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려할 것도 많다.


따라서 사실 엔지니어가 발명 신고서를 쓸 때는 청구항의 상세내용을 기술할 필요는 없다. 내 발명에서 권리로 주장하고 싶은 '방법들(Method)' 그리고 이의 '장치(Apparatus) 구성'을 권리 범위로 정의해 리스트로 기술하면, 변리사가 내용을 파악해 청구항으로 구체화시킨다.


하지만, 엔지니어는 특허 청구항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 특히 독립항과 종속항의 차이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변리사가 설계한 내 발명의 청구항을 검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특허청에서 반려 의견이 도착했을 때, 권리 범위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변리사와의 논의를 거치는데, 이때 청구항 해석능력이 필요하다.


통상 최초 특허 출원 시 약간은 권리 범위를 넓게 잡고 청구항을 작성하는 게 관례다. 특허청에서 1차 출원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가장 좋은 경우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반려 의견을 반영해 재출원하면 된다.



엔지니어 개인에게 특허의 의미


이제 우리는 회사 입장에서 특허가 중요한 것은 잘 이해했고 어떻게 작성하는지도 파악했다. 그렇다면 엔지니어 개인의 입장에서, 특허를 많이 써두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전술했듯 엔지니어가 업무상 특허 작성 시 그 권리는 회사에 귀속된다 (이를 위해 별도의 위임장에 서명한다). 따라서 라이선스와 같이 특허권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직접적으로 취하지는 못한다.


회사마다 정책은 다르지만 권리 위임에 대한 소정의 보상은 이뤄진다. 다만 솔직히 약소한 편이다 (수십만 원 수준). 하지만, 작성한 특허 기술이 회사 제품에 직접적으로 탑재되었을 경우, 특히 큰 매출을 일으킨 경우라면 별도의 큰 보상이 뒤따르기도 한다.


또한 특허를 작성하면 할수록 지적 재산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변리사, 특허부서와 많은 소통을 통해, 특허를 분석하는 법도 터득하고, 변리사에 준하는 법률적 지식을 쌓기도 한다. 심지어 경력이 많이 쌓인 엔지니어는 뒤늦게 적성을 발견해 특허 부서로 전직을 하기도 한다. 전 직장 동료 중 몇 명은 '특허청'으로 이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허 실적의 가장 큰 유익은 엔지니어의 역량과 전문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실적이 많을수록 특정 분야에서 얼마나 깊이 있게 일했는지를 보여주며,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까지 간접적으로 시사할 수 있다. 특허는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실적에서 특허 종류가 다양하다면 엔지니어가 다양한 기술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많은 프로젝트 참여 경험, 기술 도메인에 대한 이해를 쌓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특허 작성은 공저자와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과 협업능력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다. 따라서 엔지니어는 기회가 될 때마다 특허를 부지런히 써두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엔지니어를 지향하며 미국 이직을 준비한다면, 한국에서 NIW 영주권을 신청할 때 특허 실적은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 신청자가 이민국에 영주권을 신청할 때,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될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정량적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인텔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M사에서 인텔로 이직을 원하던 연구원 C가 인터뷰를 위해 발표를 진행했다. 통상 연구원의 인터뷰 시 전 직장이나 학교에서 발표한 논문을 위주로 발표를 하곤 한다.


전 직장 M사에서 근무 경력이 짧았던 C는 참여 연구 프로젝트가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모든 프로젝트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되지도 않았다. C는 뭔가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력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되지 못해 인터뷰 시 그 자세한 내용을 발설할 수 없었다.


C가 슬라이드 한 장에 우리에게 보여줬던 것은 출원 번호, 출원일이 명시된 '특허 제목'이었다. 논문까지는 쓰지는 못했지만, 대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출원한 특허를 보여주며 기술 전문성을 어필한 것이다. 어찌 보면 참 재기 발랄한 시도라 볼 수 있는데, 그 덕분인지 인터뷰에 참여했던 팀원들은 C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를 채용하려 했으나 C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N사에 입사했다).


특허 실적이 이직 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다시 말하지만 기회 될 때마다 특허를 부지런히 써두도록 하자.



부디 본 글이 한국의 테크 기업의 엔지니어들에게 특허 작성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 작성 방법론에 대한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 예나빠



* 엔지니어 커리어에 관해 질문 있으시면 아래 글에 댓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예나빠 브런치 북/매거진 소개


자기계발/정보전달/칼럼

글로벌 오덕 엔지니어 성장 로드맵 - 한국의 공학도/경력자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 (연재중)

미국 오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 미국 진출을 원하는 한국 경력자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

미국 연구원과 엔지니어의 길 - 미국 기업 연구원/엔지니어에 대한 정보 전달

실리콘 밸리 북마크 - 실리콘 밸리와 한국의 IT업계를 이야기하는 칼럼


에세이

내일은 실리콘 밸리 - 어느 중년 엔지니어의 곤궁한 실리콘 밸리 이직담 (완).

미국에서 일하니 여전히 행복한가요 - 미국 테크 회사 직장 에세이

미국에서 일하니 행복한가요 - 미국 테크 회사 직장 에세이 (완)

미술관에 또 가고 싶은 아빠 - 미술 + 육아 에세이

미술관으로 간 아빠 - 미술 + 육아 에세이 (완)


교양

미술관에 간 엔지니어 - 그래픽스 전공자 시선으로 바라본 미술사. 교양서.



[1] https://harrityllp.com/patent300/

이전 13화 논문은 서론이 9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