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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Mar 17. 2024

인맥보다 평판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 이유


엔지니어라면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쯤 누구나 안다. 아니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회인에게 인맥은 중요하다. 인맥을 활용하면 새로운 직장, 사업 파트너와 같은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업계 동향이나 필요한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인맥을 통해 전문가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도 하며, 더 빠르게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다. 특히 개인 사업을 할 때 파트너, 고객, 투자자를 유치할 때 인맥은 큰 힘을 발휘한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며, 그 '사람'이라는 것도 혼자인 경우는 없다. 모든 '일'에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어떻게든 엮이기 마련이다. 그 관계라는 것이 지나치면 낙하산, 정치질로 변질되지만, 적절히 활용될 수만 있다면 앞에서 말한 순기능이 제대로 동작한다. 이런 긍정적 관계를 넓혀나가는 것이 현대인들에게는 필수인 시대가 된 것이다. '인맥'에 관한 자기 계발서가 범람하고, 이런 수요를 꿰뚫어 '관계망'이라 불리는 서비스들이 우수죽순 등장했던 이유다.


이런 현상이 비단 한국만 그러하랴. 미국은 관계'를 통해 해결되는 일들이 유독 많다. 특히 추천을 받는 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다. 입시, 진학, 취업, 비자 신청 시 누군가의 추천서가 필요하고, 이직이 확정되었을 때 전 직장의 레퍼런스를 요구하곤 한다. 하다 못해 사소한 집수리를 위해 수리공을 부르더라도 레퍼런스를 따진다.


그래서 미국 현지인들은 평소 인맥에 많은 신경을 쓴다. 직장 상사, 동료, 지인, 동창, 이웃 등 자신의 관계망에 연결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 노력한다.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졸업생 모임, 동종 업계의 협회나 학회, 지역사회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하는 이유다.


이들이 이렇게 네트워킹에 신경 쓰는 것은 인맥에 기반한 추천이 실제로 꽤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는 채용 시장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회사는 사람을 뽑을 때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냐'며 직원들에게 우선 추천을 받는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의 말만큼 믿을 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견고하고, 면밀하다 해도 인터뷰로는 사람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다. 능력이 출중해서 채용했는데, 알고 보니 태도나 인성, 팀워크, 워크에씩에 결함이 있다면, 팀 생산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회사는 그만큼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빅테크 기업들이 인터뷰에서 '행동 면접(Behavioral Interview)'을 강화하거나, 즉시 채용보다 인턴십을 통한 검증 기간을 두는 것이 같은 맥락이다.


추천 자체도 가볍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추천을 부탁하더라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정중히 거절한다. 단순히 지인의 부탁이라고 모르는 이를 추천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누군가를 추천한다는 것은 내 이름을 걸고 피추천인을 보증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피추천인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생각보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경우, 화살은 결국 추천인에게 돌아간다. 게다가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추천인의 판단력, 조직에 대한 헌신마저 의심받게 된다.


내향인에게 사교성이라는 가면을 쓰는 것이 가장 힘들다. 이미지 출처=예나빠 태블릿


따라서 인맥의 본질은 단순히 지인을 늘리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누군가로부터 추천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에 있다. 업계에 100명의 지인이 있어도, 내가 피추천자로서 준비되지 않다면 그 지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추천할 때는 그 사람의 '능력'만 보지 않는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추천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격에 별 문제가 없고,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한다 생각해, 스스로를 '나 정도면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라 쉽게 생각하지는 않는가?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란 의외로 많은 것을 내포한 말이다.


우리는 조직에서 사람과 함께 일할 때 다양한 상황에 직면한다. 실수를 했을 때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동료와의 소통은 어떻게 하는지, 마감과 같은 시간적 압박 속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하는지, 목표 설정 및 달성을 효과적으로 하는지 이러한 내적, 외적 갈등 구조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비로소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된다.


보통의 엔지니어가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맺는 인적 네트워크의 범위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학부 시절의 동기나 선후배, 대학원에 진학하면 지도 교수, 연구실 선후배, 취업 후에는 동기, 팀원, 상사 정도다. 여기에 학회, 컨퍼런스, 네트워킹 행사등 외부 활동에 부지런을 더 떨면, 동종 업계 인사들, 같은 분야 교수들 정도를 추가로 알게 된다. 소수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커리어 궤적에서 만나 알게 되는 사람들, 현재 소속된 곳에서 함께 일과를 공유하는 이들에게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모임에서 스쳐 지났던 인연 100명보다 1명의 직장 동료가 기억에 더 남기 마련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다. 내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지를 따져가며 관계를 맺는다. 내가 친절을 베풀 때 언젠가 보답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한다. 100명의 지인을 만드는 이유도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조직에서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선배, 동료에게는 간을 빼줄 것처럼 잘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철저히 무시한다.


따라서 좋은 대인 관계를 맺는 것에 앞서, 지금 현재의 동료에게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바로 조직 내에서, 나아가 업계에서의 내 '평판'이 된다. 같은 업계에 남아있는 한 지금의 동료는 언젠가 다른 곳에서 또 만난다. 그에게 내 평판이 좋게 각인되어 있다면 그는 후일 반드시 힘을 써주게 되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현직장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영향력을 키우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는 넓어지게 되어있다. 내게 기술적 자문을 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상사는 당신에게 임원 앞에서 발표를 시킬 것이며, 사내에서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내가 먼저 사람을 만나러 부지런을 떨 필요 없이, 당신은 자석처럼 주변인들을 끌어당기게 될 것이다. 인맥 쌓기보다 평판, 그리고 자신의 일에 더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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