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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Sep 10. 2020

영어는 어떻게 준비했어요?

1년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공부법.


"그냥 학원 다니고, 출장 다니며 했죠. 뭐."


간혹 주위 분들이 제 영어에 대해 물어보시면 이렇게 적당히 눙치며 대답하곤 합니다. 미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분들은 미국에서 석사나 박사 유학 후 취업한 경우가 많고, 한국에서 바로 오신 분들도 외국계 한국법인에서 트랜스퍼하신 분들이었죠. 그래서 저처럼 한국 회사를 다니다가 직접 미국 회사로 이직 한 사람을 만나면, 모두들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제 영어입니다. 한국에만 있던 사람이 어떻게 인터뷰를 통과해 미국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하죠. 뒤돌아보면 참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영어 고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요.


문법과 독해 위주의 주입식 영어교육을 받아온 평범한 대한민국의 대학생, 직장인들은 누구나 영어 때문에 고민합니다. 입사지원 시 토익스피킹이나 오픽 같은 공인 시험의 일정 수준의 영어점수를 제출해야 합니다. 입사 후에도 해마다 인사기록에 시험 점수를 갱신해야 하죠. 업무 중엔 또 어떤가요? 유학파 동료가 유창한 발음으로 외국에서 온 손님들과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위축됩니다. 아, 대학 다닐 때 어학연수라도 다녀 올 걸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되죠.


2016년 기사에 따르면 (휴넷 설문조사. 731명 대상),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업무상 영어를 쓸 일이 없는데도 말이죠. 주요한 스펙이니까, 안 하면 업무영역이 좁아질까 봐,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오늘도 직장인들은 없는 시간을 쪼개 학원을 가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전화나 화상으로 튜터와 대화를 시도합니다.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가능한 좀 더 싸고 저렴한 방법을 찾아 인터넷을 전전합니다. 자신의 영어 실패(?)를 아이에게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은 부모들은 자식들을 영어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기도 하죠.


출처: 어쩌다 어른. tvN


그래서 한국의 영어 교육시장은 불경기가 없습니다. 2018년 통계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영어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전년 약 5조 원 정도라고 합니다. 웬만한 대기업 연매출 수준입니다. 영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직장인과 부모들은 월급에서 적지 않은 돈을 이들에게 지불하고 있죠. 왜 남의 나라 말을 배우려고 모두가 이렇게 경제적, 사회적인 부담을 가져야 할까요. 오늘도 우리는 우리나라 공교육의 부실함에 푸념을 할 수밖에 없죠.


저도 영어를 위해 안 해본 것 없는 것 같습니다. 학부시절엔 토익공부부터 *철, Y*M, 이*훈 같은 어학원을 다녔고, 대학원 시절엔 교내 어학당 출근, 독학으로는 뉴스 받아쓰기, 한때 유행하던 '**공부 절대 하지 마라'도 해봤고, 입사 후엔 스피* 맥스 같은 사내 온라인 교육, 전화영어 수강 등 시중의 웬만한 영어 공부법은 다 따라 해 봤죠. 하지만, 그 어느 하나 도움이 된 것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교수법보다 제 박약한 의지 문제였죠. 뭐 하나라도 꾸준하지 못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맡고 있던 팀이 해체되어 실의에 빠져있던 즈음이었습니다. 제게는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했습니다. 이럴 때는 뭔가 나를 일으켜 줄 동기가 필요하죠.


'그래. 쉬고 있던 영어공부나 다시 해보자'


집 근처 영어학원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대일 회화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무언가 몰입할 것이 필요했던 저는 레벨테스트 후 바로 그 자리에서 등록을 했습니다. 그것도 6개월치를 한 번에. 그날 저녁 저는 폭풍 같은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학원을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약속한 시간 조그만 방에서 나 혼자만을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튜터)가 있다는 생각에, 아무리 피곤해도 이른 아침에 일어나 수업에 가게 되더군요.


선생님은 텍사스에서 온 20대 백인 남성이었는데, 이 분이 약간 덕후 기질이 있어서 역시 덕후 기질이 있는 저와 아주 잘 통했습니다. 한 주제로 수업을 시작하다가도 대화가 삼천포로 빠져 쉴 새 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약속한 1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덕후 영어선생. 제레미. 이미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채디디.


주말 빼고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개월 동안 아침 7시마다 학원을 다녔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지. 야근후 밤 10시-11시에 집에 와도 다음날 아침에 어김없이 일어나 학원으로 향하던 그 열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저답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수업이, 그 선생님이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즈음에 본 사내 오픽에서 등급 AL(Advanced Low)를 받으며 영어 스피킹에 대한 자신감이 붙게 되었지요.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방법 불문하고 나를 '1년 동안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만든다면 그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을. 어떤 영어 교수법이든 상관없습니다. 1년 정도 꾸준히 한다면 그 효과가 나타나게 마련이죠.


그런데 사실 1년 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언가를 하는 것은 엄청난 의지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공부에도 '재미(fun)'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지속 가능함을 담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요소죠. 고통스러운 '공부'라는 행위를 '즐거움'으로 치환시켜줄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미드 감상이든, 뉴스 청취든, 전화영어든, 저처럼 일대일 회화든 말이죠. 이것저것 조금씩 해보고 재미를 붙일 수 있는 한 가지를 정해 꾸준히 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그것이,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미국에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엔지니어들과 만납니다. 그들은 자국에서 자라며 받은 공교육만으로 원어민이 되었죠. 무척이나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에겐 영어는 공짜 점심 같은 것인데, 우리는 매우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겨우 먹을 수 있는 밥이죠. 어쩔 수 없습니다. 애초에 세상은 불공평하니까요. 태초에 인류가 바벨탑을 쌓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언어가 수백 가지로 나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이민을 준비하며 이삿짐을 싸다가 책장에 꽂혀있던 몇몇 오픽 교재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하면 IH 받는다>, <AL 한 권으로 끝내기>와 같은 책 제목을 보고 쓴웃음이 나오더군요. 오픽 시험이 있는 날이면 일주일 전부터 책의 스크립트를 달달 외우던 제 우스운 모습이 생각나서요. "에이 꼴 보기 싫어!" 하며 책들을 당장 내다 버렸습니다.


"이제는 영어공부는 그만해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영어가 저절로 늘 줄 알았습니다. 왠 걸요. 딱 현상유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이면 또 그 수준에 맞는 영어가 필요해지더군요. 그래서, 영어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저는 오늘도 화상으로 튜터를 만납니다. 제가 명명한 "1년 꾸준히 법칙"을 따라서.



- 예나빠.


ps.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려면 어느 정도의 영어실력이 필요한가요?>

물론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 하지만, 순수하게 한국의 공교육만으로 영어 공부를 받아온 입장에서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일단, 입사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기본적인 회화 가능'이란 상대방의 말을 대략이라도 알아들수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약간의 막힘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는 전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오픽으로 환산하면 'IH' 레벨 정도로 생각한다.

일단 온사이트 인터뷰까지 가기 전에 대부분 전화/화상 인터뷰를 거치게 되는데, '음성'정보만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오히려, 대면으로 진행하는 온사이트 인터뷰를 가게 되면 화이트보드 등의 시각정보를 함께 사용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도 있다. 물론, 인터뷰는 지원자의 '실력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에 불과한 '영어'를 평가 잣대로 삼지는 않는다. 따라서, 인터뷰어는 원어민이 아닌 지원자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편이다. 필요하면 재차, 천천히 말해주곤 한다.

오히려 진짜 '영어 실력'은 실제로 실무를 하는데 필요하다. 대부분의 개발직군의 일이 협업이 중요하고 온라인 회의가 생활화되어있기 때문에,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라도 충분한 스피킹/리스닝 실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아무리 개발직이라 하더라도, 연차가 높거나 경력직으로 입사를 하는 경우 단순히 정의된 일을 혼자 하기보다, 타 유관부서, 협력사 등과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에 영어의 중요성은 더 높아진다. 경력 개발, 상위 직급으로의 진급을 위해서라도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기술 영향력(Influence)을 행사해야 하는데 이때 원활한 영어는 필수적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팀원이 영어가 좀 부족하다면,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특별히 '배려 영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평소와 같이 똑같은 속도로 발화하며 소통을 시도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팀원의 영어 향상을 위해서라도 이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것은 본인이 채울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경험상, 미국 회사로 이직한다고 영어실력이 극적으로 향상되지 않는 것 같다. 회사에서 회의나 커뮤니케이션이 많다고 해도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서 연구 개발로 보내게 된다. 결국, 따로 시간을 내서 영어는 계속 공부할 수밖에 없다.

정리하면, 일단 인터뷰를 통과할 최소한의 영어 실력을 기르고, 부족한 것은 현지에서 ESL과 같은 것을 통해 보충하는 방법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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