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여라도 네가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그래서 나, 정말 그 말만 믿고

by 일요일은 쉽니다


그날 새벽부터 멍했던 거 같아

너랑 통화할 때는 정말 멍했어

그래서 알겠다고, 그럼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도

별다른 생각도, 느낌도 없었던 거야


그냥

그래, 그렇게 하자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하자

그래, 그렇게 하자


어두웠던 창밖이 벌써 밝아지기 시작하고

결국 길고 길었던 전화를 끊고

이게 마지막일까, 아니면 또 다른 끝이 있을까를 놓고

잠깐 멍하니 앉아있다가

그러다가 문득 아, 이게 마지막 통화였구나

이게 정말 마지막이었구나

정말 마지막이었구나

마지막이었구나 생각이 들더라


전화를 끊은 아침부터

한숨도 못 잔 채 그대로 출근 준비를 하고

조금 고요해진 지하철에 올라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 옆 책상에 짐을 내려놓고

밤새 쌓인 먼지를 닦고, 컴퓨터를 켜고

뜨거운 물을 받아서 티백을 풀고

다시 돌아와 컵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화장실로 가서 아무 색깔도 없는 얼굴을 한 번 보고

이내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그 모든 일을 하는 동안


다시 걸고 싶은데

다시 전화를 걸고 싶은데

다시 너한테 전화를 걸고 싶은데


근데 마지막이었구나

근데 정말 마지막이었구나

근데 그게 정말 마지막이었구나


마음이 멍했으면 좋았으련만

멍한 것도 잠시,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해서, 온갖 감정이

그래서 숨을 못 쉬겠으면 잠시 일어서서 복도로 나가서

마음을 한번 쓸어내리고는 돌아오고

“여기서 뭐 해?”라는 말을 그날만 수도 없이 들었을 만큼

어딘가에 숨고 싶은데 숨을 곳이 없어서

그래서 겨우 뒤돌아서서 마음을 한번 쓸어내리고

그러고는 다시 돌아오고

뒤돌아서서 마음을 한번 쓸어내리고

그러고는 다시 돌아오고


나 수도 없이 무너졌을 텐데

셀 수 없을 만큼 너에게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을 텐데

그날 점심까지 버티고는 멀리 있는 친구랑 통화가 됐는데


그러더라고,

연락하지 말라고

혹여라도 네가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연락하지 말라고



그래서 안 했어

그래서 너한테 연락을 안 했어

그래서 너한테 먼저 연락이 오기 전까지 연락을 안 했어

혹여라도 네가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연락하면 안 된다고 해서


네가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네가 더는 그립지 않아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네가 정말 다 잊혀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네가 떠난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게 돼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네가 원망스러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네가 실망스러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네가 미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야


혹여라도 네가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연락하지 말라고 해서

그래서 나 그 말만 믿고

한 번도 연락을 안 한 거야


독하구나 싶을 만큼 마음먹고

하루에 수백 번도 더 전화기에 네 번호를 띄운 채

통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너한테 바로 연결될 텐데

10자리 번호는 다 누르고선 마지막 그 11번째를 누르지 않고


그러고 한참을 쳐다만 보고

그리워 한참을 쳐다만 보고

그렇게 한참을 쳐다만 보고


그래서 내가 그곳으로 돌아갔을 때도

너에게만은 돌아왔다는 연락을 하지 않았던 거야

심지어 네 친구들도 다 알았는데

너한테만은 연락하지 않았던 거야


혹여라도 네가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연락하지 말라고 해서

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래서 나 정말 그 말만 믿고

한 번도 연락을 안 한 거야


근데



그럼 네가 해주지

네가 먼저 연락을 해주지

그럼 네가 먼저 연락을 해주지 그랬어

나 강한 척 너한테 아무런 안부도 없이

괜찮은 척 너한테 아무런 내색도 없이

그렇게 그림자 속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두꺼운 껍데기만을 뒤집어쓴 채

혹여나 네가 손을 내밀면 너에게 그대로 다가가

기다렸다고, 많이 그리웠다고 기댈 준비만 하고 있었는데


퇴근길 오늘의 짐을 한시름 덜고서,

매일 밤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멍하니 있다가,

네 사진을 눌렀다, 지웠다,

다시 눌렀다, 또 지웠다


그러면 네가 와주지

네가 먼저 다가와 주지

네가 먼저 돌아와 주지 그랬어

나는 혹여라도 네가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연락하지 말라고 해서

그 말만 믿고 기다렸는데

네 자리를 비워둔 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너도 망설인 적이 있을까

너도 그리운 적이 있을까

너도 돌아오려고 다시 발걸음을 돌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을까


그러다 끝내 너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던 걸까

못했던 걸까

돌아오려고 하다가 이내

돌아오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러지 않았던 걸까


돌아오지 않기로 했다면

이전보다 더 잘 지내면 돼

연락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돌아와 달라 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네 소식을 들으니 잘 지내는 거 같아

이제야 좀 웃고 숨 쉬는 거 같아

보내기를 잘했다고

믿을 수 있게


그러면 돼


IMG_20161018_135335.jpg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