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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Nov 20. 2017

#26. 마음이 물드는 시간

그는 멋졌다



 

그러니까 참 신기 하단 말이야.

우리가 마주치고, 또 만나고, 다시 만나고.

신기해서.

우리가 만나고, 또 만나고, 다시 만나게 된 게.


생일날 네 연락이 왔을 때 놀랐어.  

생일이 막상 기억하기도 어렵고 나이가 들수록 별 인사 없이 지나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아침에 축하한다며 온 네 연락을 보고 고맙다 답장을 보내며 조금 놀랐어.

올해 생일엔 알람을 다 꺼놔서 평소보다 연락이 안 왔기에 더 그랬던 거 같아.

기억하고 있구나. 고맙네.


그렇게 가볍게 인사가 끝나고 스쳐 지나갔을 텐데,

그러고 한 달 후 네가 다시 연락이 왔잖아.

생각이 나서 연락한다며 잘 지내냐고. 너는 다음날 학교 준비를 위해 떠난다고.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안부 인사를 보내던 너니까.

잠깐 짧게 대화를 나누고, 여름에 돌아오면 보자던 너의 말에

그때는 말을 못 했지만 속으로는 못 만나겠구나 했거든.

당시 나는 네가 돌아올 날짜보다 한 한 두어 달쯤 먼저 떠나게 될 일정이었고,

그래서 못 보고 가겠구나 했지. 그렇다 말은 못 했지만.


근데 그렇게 떠난 지 두어 달 즈음 후 봄에 네가 연락이 왔을 때

그때는 정말 놀랐어.

한창 날씨도 꽃도 예쁘던 4월이었는데, 그즈음 일주일간 네 생각이 났었거든.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 잘 했으려나? 잘 지내고 있으려나? 네 안부가 궁금했는데

네 연락이 온 거야. 그때는 정말 놀랐어.   

잘 지내고 있냐며 생각나서 연락한다고.

너는 항상 이름을 불러주더라. 생각보다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


그리고 봄에 나는 일본을 다녀왔어.


답답했고, 속상했어.

막막했고, 깜깜했어.

어디론가 떠나야 했어. 어디론가 그냥 떠나야만 했어.

그대로 그 자리에 있기에 너무 속상해서.

근데 마침 일본에 있던 친구랑 일정이 맞았고

동경을 가게 된 거야.


그리고 그렇게 가게 된 동경은 너무 좋았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공항에 도착해서 기차표를 끊고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공항 사진을 너에게 보냈지.

잠깐 기회가 돼서 동경에 놀러 왔다, 정도의 안부였는데

그렇게 대화가 계속 이어지게 된 거야.



하루의 시작을 너로 시작하고

하루의 중간을 너로 채우고

하루의 끝을 너로 마무리하고.



처음 온 동경에 동경 친구가 없어서 아쉬운데

어쩌면 함께 도시에 있는 것보다

더 함께 인 것처럼.



오늘 어디를 다녀올 거야.

여기 너무 예쁘다.

이거 정말 맛있는데?

너도 있었으면 좋았겠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너로 시작하고

하루의 중간을 너로 채우고

하루의 끝을 너로 마무리하고.


너도 동경이 그립지?

나도 떠나고 싶지 않네.

이곳에 살고 싶다.

어딘가 편안해. 마음이 편안해.


늘 인사를 받기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먼저 보낸 안부에, 계속 이어진 대화에,

어쩌면 함께 다닌 것보다 더 함께인 것처럼

너로 인해 그곳이 한 겹 더 따뜻했어. 정말.


그렇게 너를 동경에서도, 서울에서도 못 볼 줄 알았는데


동경에 있는 동안 큰 결정 하나를 내렸고

마침 당시 상황도 조금씩 변하면서

일정이 미뤄진 거야.

네가 다시 돌아온 후에, 내가 떠나는 거로.


덕분에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어, 그동안 잘 지냈냐며.

나는 너무 오랜만에 보는 거 아니냐며 투덜거렸는데

너는 오래된 거 같지 않다며 웃더라.

그리고 나는 옛날 생각에 조용하던 너를 떠올리며 주로 내가 대화를 이끌어나가야겠구나 했는데

여전히 어른스러운 모습 그대로인데 내가 애쓰지 않아도 대화가 흘러가는 모습에

솔직히 놀랐어.

보통 한 시간 즈음이면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날은 세 시간을 보내고도 우리는 계속 말을 나누고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만나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위치에서 또 열심히 살다가 만나자며

그렇게 만남을 마무리하고 이제 또 일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 보겠구나 했는데

근데 네가 다시 연락이 온 거야.

가기 전에 시간 되면 또 보자고.

그렇게 우리는 불과 짧은 시간 만에

다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


아무래도 이번에 못 보면 한참 못 볼 거 같아서 연락했다는 네 말에 잘했다고.

원래 커피를 마시지 않던 너와 우리는 커피 한잔을 두고 대화를 나누며

짧은 시간이 끝나고는 어딘가 아쉽더라.

이제 진짜 안녕.

진짜 잘 가.


아쉽지만 이별은 익숙하니까

근처에 저녁 약속으로 향하는 너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쉬운 마음을 품고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너에게 연락을 했어.

혹시 집에 가는 길이면 잠깐 들릴 수 있냐고.


한 2년 후 다시 보자던 우리가

고작 2시간 만에 다시 마주했을 때

생각보다 금방 만나게 됐다며 웃던 네 모습에

책 한 권을 건네주며, 책 선물하고 싶었다고

나한테 올해 도움이 많이 된 책이라고.


난 그게 정말 마지막일 줄 알았어.

너는 그러고 며칠 후 떠났고

나도 그로부터 한 2주 후면 떠날 예정이었으니까.

네가 돌아오려면 한 달은 기다려야 했고

나는 한 달의 시간이 없었고.

그렇게 또 열심히 살다가 만나겠구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미루고 미루던 비행기 티켓을 끊으려는데


우연히도 거짓말처럼

일정이 또 한 번 미뤄진 거야.

네가 한국에 돌아오기로 한 날짜로부터 며칠 이후로.


다른 친구였다면 방학이나 휴가를 맞아

일이 년에 한 번씩 보고

또 각자의 삶을 살고

또 일이 년에 한 번씩 보고

각자의 삶을 살고 그랬을 텐데



우리는 길이 여러 번

마주치고, 또 겹치고.



매번 우리 동네로 왔으니

이번에는 내가 가겠다는 말에

네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서 만나

두 달간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는

사람 마음 싱숭생숭하게

화두를 던지고는


처음으로 친구 결혼식에 가보았는데 참 좋아 보이더라

우와, 일찍 하네

마음이 확실하니까

신기하다

응, 좋아 보이더라고

그래?

너는 친구 중에 결혼한 사람 없어?

동갑내기 중에는 아직 없지, 동기들은 몇 있어도

나는 좋은 거 같아

정말?

응, 좋은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 다

조금 더 즐기다, 그게 자유가 되었든 여유가 되었든

조금 더 즐기다 최대한 늦게 가는

그런 경우가 대다수인데

마음이 싱숭생숭하게 너는

그런 얘기를

내 눈을 마주 보면서 하면


아, 네가 선물해준 책 있잖아

우리 교회 목사님이 쓰신 거다?

에? 정말? 세상에

그러니까, 나도 정말 신기했어


신기하더라

우리는 참

많은 게 겹쳐서


요번엔 내가 약속이 있어서

지하철역 앞에서

언제 또 보지?

금방 또 보지 않을까? 우리

지난번에도 시간이 좀 지나야 보겠구나 했는데

이렇게 금방 보게 됐잖아

동경 놀러 와 언제든지

또 가고 싶네 동경

이제 네가 있으니까



“일정이 미뤄져서

너는 번거로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좋았어

이렇게 또 한 번 볼 수 있어서”



나도 그래

좋은 친구가

좋은 사람으로

조금 다른 색으로

물 드는 시점


물 드는 순간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26. 그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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