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덴 블루 Aug 24. 2023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덴마크 오르후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코펜하겐으로 돌아왔다. 코펜하겐 동물원 방문으로 코펜하겐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에 들어서니 부모들과 함께 온 덴마크 꼬마들이 많았다.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온 친구들도 뛰어다녔다.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에 동물원 탐험을 나섰다.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쉬는 동물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판다와 호랑이, 사자도 보았다. 호랑이와 사자 몇몇도 더위에 지쳐서 잠을 자거나 누워 있었다. 문득 호랑이와 사자를 보고 돌아서며 생각했다. ‘그들이 살 곳은 조그만 동물원이 아니라 드넓은 야생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우리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그들을 좁은 동물원이라는 공간에 가둔 것이 아닌가.“

 

코펜하겐 동물원을 나와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으로 향했다. 관광객에게 개방된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 궁전은 덴마크 정부, 국회와 법원이 함께 쓰는 건물이라고 한다. 궁전을 보면서 생각했다.

   

”오래된 건물에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같이 지낼 수 있지?“


참 신기하고 생소했다. 우리나라는 국회에서도 여당,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서로 헐뜯는 모습을 언론에서 자주 보곤 한다. 

”그런데 성향이 뚜렷한 세 집단을 한곳에 모아놓다니?“ 

”덴마크 사람들은 진짜 단합이 잘 되는 모양이네.“

이렇게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저녁 식사로 뭘 먹을지 숙소 근처의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정하기로 했다. 검색해보니 숙소 근처에 4개의 마트가 있었다. 덴마크에서 가장 많은 Netto부터 둘러봤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마지막 Meny라는 마트에 와 있었다.

  

저녁 식사로 고기를 먹고 싶은데 무슨 고기를 먹을지 정하지 못했다. 제품을 봐도 전부 덴마크어로 적혀있어 무슨 고기인지 알 수 없는 게 많았다. 또 쉬운 요리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최종 선택한 것이 피자였다. 피자 코너에 있는데 직원이 다가와서 마칠 시간이라고 말했다.


시계를 보니 저녁 8시였다. 다른 마트들은 마치는 시간이 저녁 9시로 알고 있는데 Meny는 빨랐다. 서둘러 고르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내가 마지막 고객인 것 같았다. 피자, 과일, 빵과 음료수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계산하고 사 온 제품들을 비닐봉지에 담았다. 마트를 나와 발걸음을 재촉하며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내가 사 온 물건들을 꺼냈다. 확인해보니 피자가 안 보였다. 다시 천천히 살펴봐도 피자를 볼 수 없었다.


”아차, 급하게 제품을 담다가 피자를 계산대에 놔두고 온 모양이네.“

”한국에서도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없는데 덴마크에서 하다니!“


마트가 문 닫을 시간이라 급한 마음에 이런 실수를 한 것이었다. 피자가 마트에 있는지 물어보려고 구글맵에서 Meny를 검색해서 전화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8시가 넘었으니 퇴근했겠구나.”

“혹시 숙소 주인에게 이 상황을 말해볼까?”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주인 역시 Meny로 전화했다. 내가 8시가 마감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전화를 안 받아요”

주인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마트로 가면 피자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반신반의했다. 

“내일 찾을 수 있을까?“

”혹시 피자를 마트에서 못 찾아도 어쩔 수 없지. 안 비싼 거니까 못 찾아도 괜찮아.“

이렇게 생각하며 저녁 식사는 다시 근처 Netto 마트에서 소시지를 사 와서 구워 먹었다.

  

다음 날이 밝았다. 나는 다시 코펜하겐을 여행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저녁 7시가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Meny 마트로 향했다. 

”예이, 피자를 못 찾을 거야.“

이런 마음으로 마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면에 6대의 계산대가 보였다. 계산대마다 고객들로 가득 차서 계산대 직원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입구에서 오른쪽 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 들어가서 우측에 보니 어떤 매장에 남자 직원이 서 있었다. 

”이 남자에게 물어볼까?“

”해결해줄 수 있을까?“

남자에게 다가가서 어제 피자를 구매하고 깜박하고 놓고 갔다고 얘기했다.


한국 마트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마트 직원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생각해보았다. 먼저 중간 책임자가 고객의 피자 계산서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피자를 계산한 계산대 직원을 찾아서 계산 후 피자를 보관했는지 확인할 것이다.


덴마크 남자 직원은 내 말을 듣더니 망설임 없이 담백하게 말했다.

“피자를 가져가세요.”

“알겠습니다.”


고맙기는 한데 피자를 가져가라는 말에 진짜 놀랐다.

”계산서도 확인 안 하고?“

”본인이 결정한다고?“


평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아무런 절차 없이 그런 결정을 쉽사리 할 수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덴마크가 청렴한 국가이고 신뢰가 높은 국가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 이렇게 신뢰가 높은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매장 안의 피자 코너에 갔다. 구매했던 피자는 없고 같은 가격의 다른 피자를 집었다. 피자를 가지고 입구로 걸어 나왔다. 아까 남자 직원이 있던 곳에 남자 직원은 없고 여직원이 있었다. 피자를 보여주며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알겠어요. 가셔도 됩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어제 구매한 피자와 같은 가격의 피자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자 제품도 본체만체 확인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여직원에게 물어봤다.

“남자 직원한테 피자 얘기 들었나요?”

“네, 들었습니다. 가셔도 됩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절차도 답변도 너무 시원시원하고 단순 명료했다.


“어떻게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을 믿을 수가 있지?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피자 사건이 있기 전과 후의 나의 덴마크 여행 패턴이 달라졌다. 있기 전에는 혹시나 해서 슬링백에 잠금장치를 하고 다녔다. 있고 난 뒤에는 잠금장치를 하지 않고 그냥 다녔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덴마크에서는 어떤 것도 믿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여 소매치기를 걱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콩 심은 데 팥 난다’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이전 12화 상식을 깨는 사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