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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Nov 07. 2015

단식, 첫날밤

온몸의 감각이 소름처럼 돋아 뜬 눈으로 지샌 밤




계획적인 단식은 해본 적 없었지만, 귀찮은 마음이 배고픔을 이길 때면 종종 끼니를 거르던 나였기에 하루 굶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격일 단식의 시작을 마음 편하게 '먹는 날'로 정하고 신나게 먹은 후, 저녁 8시. 나의 첫 번째 굶는 날이 시작되었다. 보통 자정이 넘어서 잠자리에 들지만, 그날은 조금 더 빨리 잠을 청했던 것 같다.


아침이 찾아왔고, 평소와 다름없이 쿨쿨 잤을 뿐인데 단식 12시간을 성공했다는 생각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이거, 생각보다 더 쉬울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불과 몇 시간 후, 나는 극심한 허기를 느꼈다. 아니야, 이건 뇌고픔이야. 속으로 나를 타일렀지만 허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 왜냐하면 그건 격렬한 뇌고픔이기 이전에 지극히 정상적인 배고픔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또렷해졌다. 언제나 밥을 먹으면 잠깐이라도 자는 버릇이 있는 나는 덕분에 집에서든 밖에서든 식사 후 한동안 사경을 헤매는데, 그날은 정반대의 이유로 사경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배가 텅텅 비었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온몸이 비워진 기분이었다. 저녁 8시. 아직도 12시간이나 남았다니.


그래 한숨 자고 나면 '먹는 날'이 찾아올거야.


전날 쉽게 흘려보낸 12시간을 떠올리며 불을 껐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정말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 일평생의 수면은 모두 포만감에 기인한 것이었나. 어두운 방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온몸 구석구석 모든 감각이 소름처럼 돋아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를 봤다. 저녁 9시.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먹는 날'은 11시간 너머에 있었다.


첫 번째 '굶는 날' 밤. 억지로 눈을 감고 있어봤자 절대로 잠들 수 없다는 것을 깨끗이 인정하고 불을 켰다. 속이 텅텅 비어서 바스락 구겨질 것 같은 가벼운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아침 식사로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며. 아침을 기다렸다.

'먹는 날'의 아침은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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