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도그림 Jul 16. 2024

어떤 수련자의 몸

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요가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요가에 깊게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든, 호기심 띈 얼굴로 요가원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사람들이든, ‘요가‘라는 세계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들은 모종의 공통성이 있다. 기억에 남는 몇몇 얼굴들, 대화들, 혹은 몸들이 있는데, 오늘은 그중 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선생님은 나에게 일순간 요가의 세계를 설득시킨 사람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몸을 보면서 나는 ‘요가란 보통의 운동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저런 요가를 나도 해야겠다,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 이 글은 한 수련자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이름은 폴Paul 로 런던에 머무는 동안 집 근처의 요가원에서 만났다.  


어느 초여름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다가, 운동이나 해야겠다, 하고는 구글 지도로 검색해 찾은 곳이었다. 걸어서 두 블록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무턱대고 방문했는데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다. 허리 높이의 창살 철문, 울창한 나무들 너머에 고전적인 르네상스 양식의 석조 건물이 엿보였다. 철문에서부터 현관까지 이어지는 짧은 흙 길을 걸어가 금빛 문고리 초인종이 달린 육중한 마호가니 문을 열었다.  


에메랄드 빛 낡은 벽지가 발린 실내가 보였다. 그런데 여기가 요가원인가? 벽에는 일렬로 커다란 못이 박혀 있고 못에는 두터운 천 벨트가 걸려 있었다. 흡사 고문실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그 위편으로는 작은 액자들이 벽면을 두르고 있었는데 액자 속 흑백 사진에서는 한 수련자가 신체를 기형적으로 뒤트는 요가 동작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공간 뒤편에 서 있던 폴이 말했다. 그는 허름한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어떤 군살도 없이 길게 뻗은 팔과 다리가 한 그루 편백나무를 연상시켰다.  

“요가는 처음이세요?”  

“몇 번 해 봤어요.”

“이 요가원은 아헹가 (Iyengar) 스타일의 요가를 해요, 저 분이시죠, 좀 다를 거에요. 정확한 요가 아사나와 정렬에 집중하고, 벨트나 볼스터 같은 다양한 소도구들을 사용합니다.”


 그는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지에서부터 신체를 통과해 발성되는 듯한 목소리는 낮고 곧았다.  


 


수업 중에 나는 벽에 걸려있던 의문의 벨트를 허리에 묶어 그 당겨내는 힘을 느끼며 다운독을 하고 못과 못 사이의 간격을 이용해서 동작을 정밀하게 잡기도 했다. 투박하고 원시적인 도구들에 지탱하는 몸, 그 기이한 체험들. 하지만 그보다도 내 시선과 마음은 단순한 동작들을 시범 보이는 폴의 몸으로 향했다.


두 다리를 벌리고 한 손은 발목에, 한 손은 공중으로 뻗는 트리코나사나 (삼각자세) 를 하는데 동작이 마치 땅으로부터 솟아 오른 듯했다. 두 발이 동등하게 땅을 밀어내는 힘, 팔이 어떤 굽음도 없이 나무처럼 일자로 뻗어 나가는 모양, 손끝을 향해 돌려낸 얼굴의 간결한 시선, 이 모든 것이 달랐다.  


두 다리를 후들거리며 허둥지둥 몸의 곳곳에 주의를 옮겨가는 나와는 상반되는, 식물적이고 기하학적이라고도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단다아사나 (막대자세)에서 파스치무타나아사나 (앉은 전굴 자세)로 이어가는 폴의 몸은 각도기처럼 접혔다 펴지는데, 곧으면서도 여유롭다. 세월이 깎아낸 유기적인 나무조각 같은 그 신체를 나는 감탄하듯 바라보았다.  


수업이 끝나면 그는 오늘 어땠어요, 허리는 괜찮아요, 이 자세는 새로웠죠, 몇몇 짧은 대화를 나누며 학생들을 배웅한다. 한 그룹의 수강생들이 떠나고 폴은 간단히 공간을 정돈한다. 나도 이 무리에 끼어 요가원을 나섰기에 폴이 그 다음에는 수업 이후에는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매트 위에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할까? 다음 수업의 시퀀스를 머릿속으로 되새길까? 요가원 한 켠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거나 근처 강가로 산책을 갈까?  


그는 나에게 다면적인 한 명의 인간으로서보다는 어떤 이미지나 관념으로 존재했다. 요가 수련자의 몸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 말이다. 평소에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어떤 말들에 웃고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을까? 그는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감정의 결을 안고 살아갈까? 런던을 떠나온 지금, 나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식물 같은 폴, 나무-인간 폴. 깊고 곧은 그 몸은 수업시간 동안에만 잠시, 그 몸이 살아온 삶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날 그곳에서 함께 호흡하고 움직였던 그 현재적 단면에 매혹되었다. 어떤 시간이 저런 몸을 낳을지, 저 몸으로는 세상이 어떻게 느껴질지. 요가와 함께 한 삶을 살아온 그의 신체에, 그가 해석하고 재연하는 요가에 나는 직관적으로 설득되었고 그 일련의 기억 이미지들이 나를 다시 요가로 이끌었다.

이전 03화 움직임의 예술: 몸에서 몸으로 전해지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