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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Jul 02. 2024

아쉬탕가 귀신

어느덧 떠밀려 여기로 왔다

퇴근하고 아쉬탕가 요가를 갔다. 하루 종일 현장에 있어야 했던 날이라 이미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고 마음은 이러저러한 잡념으로 산만하게 분산되어 있었다. 이런 지친 몸으로 아쉬탕가를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수련을 하지 않으면 하루의 끝이 더 헛헛해질 것 같아 회사 탕비실에서 계란 세 개를 우물우물 소화시키고 일어나 요가원으로 갔다.


아쉬탕가 요가는 근력을 요하는 규격화된 시퀀스를 일정 횟수 반복하고, 일정 시간 동안 유지하는 보다 엄격한 수련이다. 예를 들어 수리야 나마쓰까라 A를 5회 반복하고, 각 횟수마다 근육을 점점 부들거리게 하는 다운독 자세에서 호흡을 5회 동안 지속한다. 수련 중간에도 완전한 휴식이나 이완 없이 건조한 지시 속에서 움직임을 계속 이어가는데 막바지에 이르면 (예컨대 차투랑가를 할 때) 더 이상 팔 근육으로 몸을 밀도 있게 지탱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푹 쓰러지거나 다운독을 하는 대신 아기자세로 가려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수리야 나마쓰까라 A



요가 시퀀스의 짜임에서 신기한 점은 요가가 몸을 자연스레 인도하며 (살며시 떠민다는 nudge가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움직이게끔 하는 방식이다. 매트 위에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몸을 서서히 일으켜 어느덧 몸을 비틀고 열고 근육 하나하나의 각도와 힘의 방향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먼저 이러한 말로써 시작한다.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호흡해 봅니다."

그래 숨이야 못 쉬겠는가, 하며 누워 있던 몸을 느그막치 일으켜 허리를 펴고 앉아 숨을 쉰다.

"들이쉬는 호흡만큼 내쉬는 호흡도 깊게.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껴봅니다."

 숨을 쉬기 시작했으니 깊게 쉬는 것 쯤이야, 하며 호흡을 늦추고 코끝에 집중하다보면 어느덧 매트에 퍼질러져 있었던 정신이 조금은 옹골하게 모아진다.


그리고 그날의 움직임을 시작하는데, 여기서의 초점은 일단 지금 내 몸 상태 그대로 그냥 움직이는 것, 그리고 지금 몸이 어떤 상태인지, 어디가 긴장되고 어느 근육이 짧아져 있는지, 어떤 동작을 할 때 시원하고 좋은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의 몸과 점점 연결된다. 동작을 하는 동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의식적으로 묵은 에너지를 내뱉고 새로운 에너지를 들인다.

"손바닥 발바닥으로 바닥을 밀어내는 힘을 쓰고."

"꼬리뼈 더 말아 올리고."

"턱 끝을 당기세요."

"어깨 힘은 빼고 시선 손 끝으로."

"내쉬는 호흡에 더 가슴을 천장을 향해 보여줍니다."


선생님의 큐에 반응하며 깨어난 몸에게, 조금만 더-, 요청해본다. 동작을 더 다듬어보자. 오늘의 워리어 투는 더 전사처럼, 손 끝으로 확산되는 에너지를 느껴보자. 그 날 나의 몸이 할 수 있는 만큼 정성스럽게 몸을 움직인다. 이러한 시퀀스들이 이어지면서 몸은 점점 열린다. 수련의 중 후반, 많은 힘과 집중을 필요로 하는 어깨서기 자세나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위를 향한 활 자세)를 할 때면 어느덧 잡념은 사라지고 나는 동작을 잘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팔꿈치 힘, 코어 잡는다, 흔들리지 않게, 조금만 더, 호흡하고.'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


그렇게 몸과 숨과 연결된 채 한 시간을 흐르면 마지막 사바아사나(송장 자세)에서는 이제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와 몸을 꼼꼼히 감각한 기쁨 속에서 멍하니 편히 쉬게 된다.


목요일의 아쉬탕가도 그러했다. 마치 하농을 반복 연습하듯 기본적인 요가 시퀀스들에 내 몸을 맡긴다. 첫번째보다 다섯번째 그 동작을 반복할 때 내 움직임이 더 꼼꼼하고 밀도있다고 느끼면서, 다섯 호흡동안 다섯 번 묵은 에너지를 뱉어내면서. 선생님의 목소리는 나를 다음 동작으로 슬며시 떠밀고 그렇게 시간과 소리와 호흡 속에 밀려나가며 끝에 다달았을 때에는 내 안에서 무언가 빠져나갔다고 느꼈다. 녹초 속의 맑음이라고 해야할까?



아쉬탕가 수련을 좋아하는 사람을 아쉬탕기 (혹은 아쉬탕귀)라고 한다는데. 이때 귀는 귀신이다. 아쉬탕가를 하다가 귀신이 되었다. 너무 힘들어서? 너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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