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수련을 통해 자라나는 것들
요가 수련을 꾸준히 한지 일년 남짓 되었다. 이전에 몇 달씩 간헐적으로 전전했던 여러 요가 스튜디오들, 오래 해온 현대무용, 이전의 여러 운동들까지 포함하면 평생 몸을 단련하고 감각하는 활동을 가까이 해왔다고도 할 수 있지만 ‘요가’라는 영역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고 매혹되기 시작한 건 지난 한 해 동안의 일이다. 빈야사, 아쉬탕가, 하타, 시바난다 등 여러 스타일의 움직임들을 몸으로 수행하며, 한 수업 동안 내 몸이 이완되고, 열리고, 한계에 도전하고, 확장되며, 어루만져지는 경험을 한다. 이를 통해 내 삶에도 점차 단단함과 고요함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면서 요가를 더욱 깊게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동작들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요가에서 움직임은 전체 수련의 일부일 뿐이라고 하는데, 또 다른 일부인 철학과 그 정신적 지향은 무엇일까? 요가가 제시하는 ‘삶의 길’은 무엇일까? 요가 수트라, 우빠니샤드, 힌두교, 불교… 수련을 계속하며 스스로 조금씩 공부해보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빠져들고 있다.
항상 진보적이고 직선적으로 미래를 향해 직진하던 내 힘의 방향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요가를 통해 공회전하는 양 돌보고 감싸는 에너지를 들이고 있다. 이 공회전이 무기력과 허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경배, 경외, 인간의 위치에 대한 자각, 겸양, 그럼에도 움직이고 살아가려는 명랑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느끼기에 더욱 소중하다. 이러한 태도로 살아온 사람들이 이루어 온 계파가 있다는 것 아닌가?
삶은 종종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는 제자리에서 종종거리는 듯 공회전하는 순간들이 있으며 수용하고 굴복하고 기다리고 그 안에서 평화를 찾아야 하는 시간들이 있다고. 그리고 요가를 통해 받아들이는 이 둥글고 부드러운 힘은 뾰족하고 조급하고 발산적인 내 경향에 적절한 제동을 가해준다. 그 벡터 값으로 살아간다면 발전하면서도 내적으로 더욱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양에의 음, 낮에의 밤, 빛에의 어둠, 동에의 정, 이 두 에너지의 중간 지점에서 중도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요가를 수련하며 내 안에서 자라나는 것들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그 중 처음은 근래 푹 빠져있는 아쉬탕가 요가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