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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의 주문

by 어린 왕자
용기의주문_브런치_리뉴얼.png

“무섭지 않아요. 두렵지 않아요.”


얼핏 보아도 어려워 보이는

수학 문제를 앞에 두고

선생님은 문제를 풀기 전

항상 이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


처음에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추임새 같아 별 감흥이 없었지만,

수학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나 역시 저 주문을

혼자 되뇌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나는 학교 수학 진도를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내 수학 성적은 그야말로 처참해졌다.


이렇게 한번 망가지기 시작한 성적은

좀처럼 회복할 줄 몰랐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시험을 보면 늘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수학 공부하는 것을

단념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내가 수학을 어려워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겁내기 시작하면

앞으로 다시는 수학 과목과

가까워질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매번 자율 학습 시간에

다른 과목보다도 우선

수학 교과서를 펼쳤다.


반 아이들은 수학을 못하면서

수학 공부에만 죽어라 전념하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성적은 바닥이고 개념도 모르는데

수학이 두렵지 않냐고 내게 묻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내심

선생님이 가르쳐 준 주문을 외우며

버티고 또 버텼다.



“무섭지 않아요. 두렵지 않아요.”


나에게 용기를 주는 이 주문을

따라 하게 된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어려운 수학 문제 앞에서

벌벌 떠는 유약한 마음을

모두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단 한 번도 문제를 푸는 공포심에

포기하거나 달아난 적은 없다.


제아무리 어려운 수학 문제라도

악착같이 매달리고 물고 늘어져

어떻게든 풀어내고 말았다.


그렇게 결국 나는

중학교 과정부터 차근차근

진도를 따라붙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3학년 수능에서는

수학 성적 1등급을 달성해 냈다.




“무섭지 않아요. 두렵지 않아요.”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어느 문제든 막힘없이 척척 풀이하는

선생님의 그런 모습이 참 근사해 보였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선생님이 교직에 있었기에

그리 보였을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굉장히 강인한 선생님도

어려운 수학 문제 앞에서

나처럼 떨고 있지 않았을까.


완전무결한 정신력을

가졌을 것으로 보이는 선생님도

내면에는 나처럼 나약하고 어리석은

평범한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아마 선생님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살다 보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용기를 꺼내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물러서지 말아야 하는 순간,

끝까지 완수해 내야 하는 순간.


내가 잘하든 못하든

주변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스스로 옳다고 생각되는

나의 길을 가야 하는

바로 그런 순간 말이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닥친

험난한 순간들을 헤쳐 나가기에 앞서

긴 심호흡과 함께 선생님이 가르쳐 준

용기의 주문을 되뇌어 본다.


“후, 이제 시작!

무섭지 않아요. 두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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